지리산 종주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길이다. 의식주의 모든 것을 스스로의 어깨에 짊어지고 25km의 산행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무겁고 고단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런 지리산 종주길을 걸으며 참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 길 위에서 저리도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을 더욱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그들을 거울삼아 나는 또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산에서는 마주 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런 문화이자 예의와도 같다. 한 번 지나치면 다시 만날 일도 없고, 기억에 남지도 않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산에서 만큼은 예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워주는 묘한 동지애가 불탄다. 게다가 산에서는 어떠한 신분이나 재산의 유무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돈이 많다고 더 편한 길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있다고 땀을 덜 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걸음과 높이를 감당해야 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이 그렇게도 산을 좋아하나 보다. (근데 나는 왜 산을 좋아하지? ㅎㅎ)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하며 걷는 걸 보니 영락없이 회사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 회사이길래 지리산 종주까지 시키나 의구심이 들었다. 당연히 업무의 연장으로 반강제적으로 왔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표정들이 너무 밝고, 누구도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이다. 거기다 여성들은 꽤나 무거운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도 큰 불평 없이 산 위를 잘도 누비고 다닌다. 이 모든 궁금증이 풀린 것은 서로 말문을 트게 됐을 때다. 이들이 모두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것은 맞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산악 동아리 모임이라는 것이다. 어쩐지.. 다들 복장이며 장비도 잘 준비되어 있고, 걷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다. 편견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다. 같은 회사에서 산에 올 수 있는 이유는 산을 좋아하는 (혹은 집에 있기 싫어하는?) 상사의 강제적 부르심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하다. 편견의 비늘이 벗겨지고 나니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한없이 다정하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나의 좁고 편협한 시각을 넓혀 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큰 소리로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하며 나와 같은 편견에 사로 잡힌 이들을 구원해 주길 바랍니다.^^
첫날 점심을 먹던 '연하천대피소', 우리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한 부자가 있었다. 아빠는 열심히 라면을 끓이고, 김치를 꺼내고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초등학교 4~5학년쯤으로 보이던 아들은 테이블에 걸터앉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빠한테 강제로 끌려온 모양새다. 아빠는 아들의 입맛을 고려해 참치를 넣을 것인지, 김치를 넣을 것인지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아들의 의사를 물어본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후 정리하는 것도 모두 아빠의 몫이다. 아빠는 웃으며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이 설거지라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까지 와서 아빠가 다 해야 되니?"
그러자 날카로운 표정으로 아들이 말한다.
"난 다른 거 할게... 나중에.."
결국 아빠가 모든 뒷정리를 다 한다. 과연 아들은 나중에 무언가를 했을까..
이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벽소령 대피소'에서 다시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 부자는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고 했다. (아.. 부럽다. 우리는 아직 갈길이 먼데...) 아빠는 매점에서 황도를 한 캔 사서 뚜껑을 따 아들 앞에 놓아준다.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자 슬며시 매점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한 캔을 더 사 오신다.
이 장면에서 마음 한 켠이 찡~해 온다. 무한한 아버지의 내리사랑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 가장 힘들고 고된 순간에도 그 달달한 황도를 모두 포기할 수 있는 사랑! '넌 어떻게 아빠한테 먹어보란 소리 한 번을 안 하니?'라고 서운해할 수도 있을 만 한데, 그저 흐뭇하게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며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부자가 왜 이 산을 걷게 되었고, 어떻게 마무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마지막 작은 바람은 이 아들이 산행을 마쳤을 때 뭔가를 배우고 깨닫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뿐이다.
(아들이 어찌나 맛있게 황도를 두 캔이나 먹었는지 나와 친구도 그 비싼 황도를 1인 1캔씩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이번에는 한 모자의 이야기다. 첫날 오후부터 마주치기 시작해 '세석대피소'에서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테이블만 공유하고 식사는 따로 먹었다.) 어떻게 아들이랑 오게 되었냐고 어머니께 묻자, 아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고 가고 싶다고 해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밤을 새우고 하루 종일 걸어서 아들이 엄청 피곤할 거라고 계속 아들 걱정만 하신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 아들도 역시 손 하나 꼼짝 안 한다. 엄마가 물 뜨러 가신 사이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물을 빌려줄 테니 먼저 끓이고 있으라고 하자, 이 아들의 놀라는 표정이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엄마가 다 알아서 할 꺼라고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쯧쯧쯧.. 정말 요즘 애들이란.....
엄마는 맛있는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추가로 컵라면까지 끓여 주었다. 아들은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로 그 많은 양을 잘도 먹어 치웠다. 삐쩍 마른녀석이었는데...
식사가 끝나고 엄마가 모든 정리를 마칠 때까지 이 아들은 부동자세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엄마가 말한다. " 옷 갈아입고 와~"
아들 왈 "무슨 옷 입어?"
엄마 왈 "그거 입어.. 아디다스 티셔츠에 무슨 바지.. 속옷도 갈아입고.."
아들 왈 "어딨는지 몰라~"
엄마 왈 "그럼 가방 가져와 엄마가 찾아줄게."
헐...... 마마보이인가....
아들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다음날 바로 하산하실 거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아들은 이번 산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을지 걱정이 된다. 아빠와 아들과 비슷한 상황인데 왜 이 엄마와 아들은 기대가 아닌 걱정의 마음이 더 클까?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는 장기적으로 자녀를 망가뜨리는 것이지 않을까? 산전수전을 겪으며 내 자녀는 이런 고통을 하루라도 덜 받기 바라는 마음으로 방패막이되어 주는 부모의 절절한 사랑이,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을 유리병으로 만드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내가 부모가 되고 자녀를 데리고 이 자리에 다시 온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산하는 길, 멋진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있었다.
아주머니 한 명에 아저씨들 넷... 아주 에너지틱하고, 즐거워 보였다.
폭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내려가시는가 싶더니 한 아저씨가 폭포 속으로 온몸을 던진다. 헉!!!!! 물 엄청 차가운데..... 나보다 100배는 더 혈기왕성하신듯했다. 이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치다 넓은 계곡에서 쉬고 있을 때, 어김없이 또 나타나셨다. 처음 만났을 때도 소주 한 병 까시더니 여기서도 또 한병 까신다. (대단)
구석에서 발 담그고 있던 우리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건빵 한 봉지와 초코바 두개를 먹으라며 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바로 그때 홍일점이던 아주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아주머니는 물속을 거닐고 계셨는데 짓궂은 동료 아저씨 한분이 아주머니를 물속에 빠뜨리신 것이다. 나는 완전 기겁을 했지만, 그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껄껄대며 즐거워만 하신다. 무슨 고등학생들도 아니고 저렇게 과격하게 노신담.. 한편으론 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빠지면 얼어 죽었을 테니까. 좀 거칠고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산 속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뛰노시는 당신들이 진정한 산사람들이십니다. 계곡 한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발만 담그고 주신 보리건빵을 먹으며 그렇게 난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