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읽혀주고 싶은 여행책들)
내가 독서를 편식하고 있다면 그건 여행책일 것이다. 여행책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들로 갈 수 없는 나라들을, 책 속의 누군가를 통해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대리만족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재미와 감동과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인생과 너무 닮아 있기에 그 시작과 끝에 대해서, 사람과 자연에 대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여행은 수많은 지혜들을 쏟아 내 준다. 나에게 세상이 학교고 여행이 공부가 되는 첫 걸음을 내딛게 해 준 수많은 여행책들... 지금까지 17개국 정도를 가 보았는데 아직도 내 버킷리스트에는 죽을때까지 다 못가볼 만큼의 꿈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여행책은 그럴싸한 사진으로 포장된 무미건조한 이야기와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여행책이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이만 이미 많은 이들이 검증해주고 있는 책들이다. 만약 아직도 이 책들을 모르고 살아왔다면, 감사하라~ 아직 당신의 삶에 흥미 진진한 이야기들을 심어 줄 주옥 같은 글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까.
한비야님은 많은 이들을 지도밖으로 행군하게 하는 선봉장 역할을 해 주신 분이다.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은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을 눈뜨게 해 준 여행에세이의 고전과도 같은 책이다. 특히 한비야님의 책은 사진이 거의 실려 있지 않고, 오로지 글자만으로도 그 어떤 사진들보다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좌충우돌 위험천만한 모험들도 어느새 같이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글로 승부하는 배낭여행의 원초적 재미를 선사하는 한비야의 책들은 여행책을 논할 때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 이다.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아들 중빈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들을 부드럽고 섬세하게 독자의 마음 속으로 전달해 주는 작가이다. 나는 중빈이가 3살이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처음 읽고는 오소희씨의 글에 완전히 매료 되었었다. 그 후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사랑바보'를 거쳐 아프리카의 매력에 푹 빠지게하는 '하쿠나마타타' 에서 정점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2013년 출간된 남미여행세트에서는 이제 아들 중빈이도 함께 작은 책을 내기에 이른다.(부록이긴 하지만) 중빈이는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어찌나 기특한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하는지 엄마뿐 아니라 독자들도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한번도 읽는 이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여행에세이의 보증수표, 오소희씨의 책은 무조건 강력추천이다.
"여행이란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다. 여행의 힘은 떠나있을 동안만 당신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욕망이멈추는곳라오스-
"온 더 로드"라는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시작으로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책여행책' 까지, 백점만점에 백점을 주고 싶은 여행책들이다. 최근에는 '책여행책'의 개정판인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가 나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온 더 로드'를 읽던 당시,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되어 '카오산 로드'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 버렸었다. 그때 누가 나에게 지금 소원이 무었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카오산로드를 거닐며 레게파마를 하고, 온 몸에 헤나를 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세계의 배낭여행자들과 수다떠는 것'이라고 말했을거다. 결국 이 로망은 나를 침몰시켰고, 일주일 휴가를 내고 나홀로 방콕으로 떠나, 별것도 없는 카오산 로드를 매일 5번씩 거닐게 했다.(물론 로망에 취한 나에게는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여행이 구경이 되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여행은 철학보다 몽상에 가깝다... 몽상가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꿈꾼다. 그래서 지구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책 여행책-
3권짜리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는 유쾌함으로 가득찬 여행책이다. 소심한 속마음 구석구석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해주니, 나와 같은 소심 여행자들에겐 엄청난 공감과 격려와 즐거움이 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한번은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블로그에 감상평을 올렸는데, 어느날 저자분이 직접 찾아와 댓글을 달아 주는 일까지 있었다. (물론 그 이후 친구신청했다가 거절당하긴 했지만..ㅠㅠ)
후속편으로 3권짜리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도 있으니, 떠나고 싶은 소심인들이여~ 이 책과 함께 신나게 남미와 아시아를 누벼보자!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한 일본작가로 우리나라엔 3권의 책이 나와 있다.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장실과 가장 멋진 별밤', '맛보기 전엔 죽지마라' 이 책도 재미로치면 어디 빠지지 않는다.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표현력은 상상력을 사로잡고,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은 얼굴 근육들을 연신 미소짓게 한다. 그만큼 번역이 잘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원본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나에게는 몇 번이나 뒷목잡을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했다. 속편들까지 계속해서 재미있기가 쉽지 않은데 이시다 유스케의 책은 속편들도 고르게 재미있으니 모두 놓치지 마시길..
가족이 세계여행을 떠나며 진정한 인류애와 가족애를 발견해 나가는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 가족간의 넘을 수 없는 벽만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진정 자녀들을 위한 행복과 비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시적인 표현이 가득한 감동적인 문구들을 선사하는 이병률님이나 최갑수님의 책들은 언어의 마술을 통해 여행의 숨은 보석들을 캐내어 준다. 이병률님의 대표작인 "끌림", 최갑수님은 최근작인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부터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채지형님은 "지구별 워커홀릭"으로 유명한데, 나는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힘"이라는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고 염원하던 그런 책을 어쩜 이리도 미리 잘 쓰셨을까....ㅠㅠ 읽는 내내 너무 좋으면서도 아쉬움이 흘러나오는 책이었다.
그림을 통해 여행을 표현한 책 중에서는 단연 오기사(오영욱)님의 책이 유명한데,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가 개인적으로는 최고! 그 외에도 그림으로 예상못한 재미를 준 윤린의 "바람샤워 라틴" 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자기만의 색깔로 담은 이다님의 "작게걷기"를 추천해 주고 싶다.
변종모님의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는 제목이 너무 끌려서 읽었는데, 제목처럼 멋진 문장력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거의 매년 새로운 책이 나올 정도로 꾸준히 집필하시는 것 같다.(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현재 총 8권!)
홍은택씨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으로 더 유명하지만 나는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굉장히 인상 깊게 남는다. 부의 상징인 '레드 아메리카'가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미국 농촌의 모습을 담은 '블루 아메리카'가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여행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책이면서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걷기여행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남희님의 책은 굉장히 문학적인 감성이 넘친다. 특히 최근에 읽은 "라틴 아메리카 춤추듯 걷다."는 그냥 엄지 척!!!
인도에서 수많은 그루들을 통해 배운 깊은 깨달음을 전수 해 주는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도 빼 놓을 수 없는 추천 도서다.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삶에 대해 놀라운 통찰과 성찰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다.
여행서뿐 아닌 다방면으로 박학다식한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들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헌데 나는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개그 코드 때문인지 이분의 책에서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이 한 권을 빼 놓고는... "나를 부르는 숲"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3,300km의 애팔레치아 산맥을 트래킹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책만큼은 문화, 코드를 뛰어넘어 미친듯이 재미있게 봤다. (홍은택씨가 번역해서 그런가?)
이 외에도 여행 관련 서적들은 무궁무진 하다. 하루에도 수십권씩 탄생하고, 이 브런치에도 수백편씩 업로드 되고(심지어 나도 그 중 하나라고...)있으니 없어서 못 볼 일은 없다. 그러니 내가 소개한 저자나 책 이외에도 좋은 여행 책은 얼마든지 있다.(혹시나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실까봐..^^;)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나 김훈님의 "자전거 여행" 같은 책도 있지만, 좀 더 철학적이고 어려운 부분들이 많고 한글자 한글자 곱씹으며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초보자들에게는 지루하거나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으니, 기본기를 충분히 갖추고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 때 도전해 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여행책을 통해서뿐 아니라 계속해서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글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쓰며, '인생'이라는 여행을 더욱 멋지고 즐겁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여행은 결핍을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가지려고만 했던 내가 아닌, 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나로 변하게 된다. 길거리에 자라나는 들풀 하나까지,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고마워진다."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힘-
"여행에서 찾을 수 있는건 그리 많지 않았다. 지구를 몇바퀴 돌아도 세상을 몇 번을 살아도 스스로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여행은 낯선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익숙한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여행과 책은 닮아 있다. 그 둘은 목마르고 고단한 인생길의 오아시스가 되어 준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가장 온건한 방식으로 부술 수 있게 해준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행과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싶다. 내 세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지 끝까지 가보고 싶다." -라틴 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사실 여행기는 여행자의 것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마치 자신의 스토리인 것처럼 글을 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이야기는 그가 만난 현지인들, 릭샤 운전수, 거리의 아이들, 속임수를 쓴 호객꾼, 그를 집으로 초대한 초면의 우체국장의 이야기다. 심지어 그가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떠나온 늙은 탁발고행승의 이야기일 뿐, 결코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의 경험이고, 내가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했다.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연과 조연, 모든 엑스트라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따라서 내가 쓰는 모든 스토리는 그들의 것이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 스토리를 경험하고 그것으로부터 삶에 대해 배울 뿐이다. 그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배역이다. "
-지구별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