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밝은 오후 5시
집을 나서는데 골목길 건너편의 자동차 지붕 위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보통은 자동차 밑에 숨어 삼엄한 경계의 눈빛만 보여주던 녀석이 어쩐 일로 저 위에 앉아 있을까?
부뚜막이 없는 시대라 얌전한 고양이는 어디든 먼저 올라가야만 했던 것은 아니겠고,
혹시... 새끼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진을 찍어도 별 반응이 없고,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길고양이가 자신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적으로 노출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도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던 얌전한 녀석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가벼운 일탈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밤 12시도 넘은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
시장통 안에 있는 골목길임에도 이 시간엔 으슥하고 고요하다.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내 뒤를 따라온다.
보통은 사람의 시선이나 행동에 따라 도망가야 할 녀석이 이날따라 아무 경계심 없이 졸졸 내 뒤를 따라온다.
이 골목엔 길고양이가 밤낮 할 것 없이 자주 출몰했었고, 한 번도 사납게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주인이라도 되는 양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 온 적은 없었다.
오히려 무서움을 느끼고 발걸음을 재촉해 빌라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서둘러 눌렀다. 빌라 입구로 들어와 자동문이 닫히고 나서야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따라오던 길고양이는 축 처진 어깨로 실망한 듯 되돌아갔다.
다른 동네, 다른 골목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길고양이의 이런 모습에 특별함과 신비함을 느꼈다.
밤마다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고, 낮에는 자동차 밑에 숨어 사람들을 훔쳐보던 길고양이들이 일탈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새끼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외부적인 자극에 의한 것인지,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해 찾아오는 내면적인 이유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길고양이를 통해 일탈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굴레에도 언젠가는 일탈이 요구될 것이다. 그것이 외부적인 자극일지, 내부적인 결핍 일지 그 원인과 계기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는 일탈의 눈을 먼저 좀 뜰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반갑게 요구되는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일탈을 기다리며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이상한 두 번의 길고양이와의 만남에서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는 것 같은 미안함을 느꼈다.
길고양이들아 미안하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