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세이 분야 1위를 달리는 있는 책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도 손이 갈 만큼 매력적이어서 덜컥 구매까지 해 읽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에세이라는 것이 뭘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녹색창에 검색을 해보니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이라고 나온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식과 상상력만으로 써 내려갈 수 있는 다른 장르의 책과는 달리, 에세이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온전히 오픈해야만 하는 장르의 책이다. 그 결과로 독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작가와 좀 더 실제적 공감과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기도 하고, 저자의 일상 속 경험과 상념을 통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메말라가고 있는 있는 나의 일상을 소생시켜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에세이인 것이구나.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좋은 에세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대답은 '잘 발견하는 것'과 '잘 배우는 것'이다.
반복된다고 여겨지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지 않는 어떤 찰나를 감각적으로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안목을 가진 것이다. 길가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도 겸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은 때때로 발걸음을 멈추어 가만히 들여다 보고,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일상 속 모든 환경과 상황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도록 나를 가르칠 것이다. 좋은 에세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쓰기 이전에 좋은 발견과 좋은 배움이 선행되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러한 발견과 배움을 얻지 못하는 걸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과 배울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여유조차 없는 바쁘고 분주한 삶 속에 온몸과 마음이 젖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작 내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어쩌다 한 번 이런 깨달음을 얻어 신이나 이렇게 적어내려 애쓰고 있는 걸 보니..
이기주 작가는 좋은 에세이를 글로 써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꼭 좋은 에세이를 글로 써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에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산문 양식을 말하는 것이지만, 어떤 이는 노래로 에세이를 써보고, 어떤 이는 그림으로, 어떤 이는 말하는 것으로, 어떤 이는 행동으로, 어떤 이는 침묵으로 에세이를 써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만의 방법과 삶으로 좋은 에세이를 써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의 좋은 에세이를 뿜어 낼 수 있을까? 지금은 글로 쓰고 있지만 때로는 '말'이 더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면 이 책은 36.5도 즈음 일 것 같다. 의외로 마음을 딱! 때리는 강력한 구절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종일관 잔잔하고 따뜻하게 체온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언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같은 언어라도 누군가에게는 뜨겁고 격렬한 365도의 분노를 일으키는 점화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차갑고 냉정한 -365도의 마음을 쾅! 닫게 하는 발길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이 36.5도의 인간미 넘치는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일이 짠! 하고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편안하고 따뜻함을 주는 언어의 온도에 잠시 찜질을 하며 삶의 피로를 덜어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따뜻한 봄날, 좋은 에세이와 같은 삶을 살아보도록 슬며시 자기 자신에게 이 책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