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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08. 2016

글을 쓴다는 것...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 불리던 어린시절에는 글씨를 잘 쓰는게 중요했다.

공부는 못했어도 글씨는 꽤 잘쓰는 편이이었던 나는

반에서 경필상 은상까지 받았던 이력이 있다.

(물론 '상장'같은 물증은  남아 있지 않다. -_-a )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잘 베껴쓰는게 중요했다.

대부분의 수업에서 선생님들은 판서를 했고,

50여명의 학생들은 부지런히 고개를 위, 아래로 까딱이며 베껴쓰기에 전념했다.

이때도 역시 공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판서는 꽤나 잘 정리를 했던 나였다.

친구들이 내 필기를 자주 빌려가곤 했었고, 나보다 시험을 잘 본 친구의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었다.

(역시 어떠한 물증도 남아 있지는 않다. -_-a )


대학생이 되었다.

더이상 글씨를 잘 쓰는게 도움이 되지가 않는다.

더이상 필기를 열심히 하는게 능사가 되지 않는다.

교수님은 필기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지도 않는다.

이제는 '레포트'라는 것을 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양식에 같은 폰트, 같은 자간격, 같은 분량으로 채워진  컴퓨터 문서로 내야 한다.

나의 글씨, 나의 필기는 이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레포트를 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불안했고, 두려웠던 대학 새내기시절,

넘쳐나던 젊은 패기를 부정한 짜집기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남들도 다 거기에 투자하니까 나도 덩달아 '성적'이라는 주가가 오를 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폭락한 주가처럼

레포트 어디에서도 진짜 내 글, 진짜 내 생각을 찾을 수 없었다.

휴지 조각이 되고 만 것이다.


군대에 갔다.

상병말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처음 독후감을 쓸때는 내용과 상관없이 글씨를 예쁘게 잘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점차 책의 내용을 잘 요약 정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발전했고,

마치 '책'이라는 선생님의 판서를 필기하듯 요약 정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제대 후 독서량이 늘어나자 이제야 진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시작부터 커다란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글은 읽기는 쉬워도 쓰기는 어렵다는 것을...

어렸을때부터 부지런히 '글씨'를 써 왔지만 단 한 순간도 '글'은 써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좋은글을 읽게되면 좋은글을 쓰고 싶어진다.

좋은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글쟁이들은 일상의 소소한 것 하나를 가지고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것일까?

독서를 하면 할수록 '글'에 대한 갈증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간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내 안의 글이 자라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글쓰기에도 왕도는 없구나.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수정하는 것을 통해 나의 '글'은 성장한다.

그래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글자뿐만이 아니라 그 글이 담고 있는 삶 자체를 잘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민한다는 것이다. 성찰한다는 것이다. 반성한다는 것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좋은글'이라는 것은

단지 기술적으로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운 글이 아니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는 글,

필요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되는 글,

필요한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삶을 살아가고, 책을 읽어가고, 글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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