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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10. 2016

걸으며 배우는 뚜벅이여행자

(5) 포항 - 해파랑길

# 8.일출 part 2


2월의 어느날은 해를 만나기 좋은 때이다. 

겨울 아침바다의 차가운 공기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붉은 지평선이 달궈지는 만큼 점점 더 간절해진다.

아무리 서두르라고 손짓해도 

해는 약속시간보다 빨리 오지도, 늦게 오지도 않는다.

정확한 약속시간에 맞춰 해가 떠오른다.

바다가 아이를 출산하듯,

화산이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듯

시뻘건 에너지로 하루의 시작을 온 세상에 알린다. 

이제 모든 만물이 이 에너지로 오늘 하루 살아갈 힘을 얻겠지.

날마다 생일을 맞이하는 햇님아~

오늘도 태어나줘서 고마워~ ^^



# 9.해파랑길 14코스


포항 호미곶에서 구룡포항까지 15.3km에 이르는 해파랑길 14코스!

영덕 블루로드가 거칠고 화려한 남성미를 발산했다면, 포항 해파랑길은 투박하지만 영롱한 빛깔로 마음을 사로잡는 어느 산골 소녀의 모습 같다. 파란 물결로 일렁이는 듯 다가오다가도 투명한 깨끗함으로 변신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어느새 또 에메랄드 빛 치마를 펄럭이며 심쿵하게 다가온다. 

청량한 소다 음료로 착각이 들어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다가도, 맑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치면 내 안의 모든 더러움들까지 깨끗이 씻겨갈 것 같은 즐거운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동해바다가 이런 팔색조의 다양한 멋을 지니고 있었다니.. 그동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새삼스레 죄송스럽다. 


포항의 해파랑길은 영덕 블루로드에 비해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며 헤매었고, 길을 잘못 들어서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길을 못 찾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개'때문이다.

유독 개들을 자주 만났는데 대부분 목줄이 풀려 있는 자유한 개들이었다. 어찌나 보초를 잘 서고 있는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근처를 지날 때면 당장이라도 달려들겠다는 자세와 눈빛을 보내며 격렬하게 짖어댔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어 어느 집 마당으로 연결되는 막다른 길로 걸어가게 되었는데, 무려 4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나와 문 앞에서 전투태세를 보이는 것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고 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화가 많이 나 보이는 개들을 향해 최대한 선한 미소를 보이며 한 걸음씩 뒷걸음질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고, 어느새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 개한테 트라우마 생기는 건 아니겠지? 

(비수기 이 길을 홀로 걸으시는 분들은 특별히 조심하시길...ㅠㅠ)



# 9-1. 등대


바다를 향해 선 든든한 육지의 선봉장.

바다를 종잇장처럼 찢으며 나아가는 수많은 배들의 안내자.

바다와 등대 사이를 건너가는 나는 이땅의 구도자.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암흑의 바다를 비추는 깊고 진한 순례자의 삶을 다짐해본다. 

빨간옷을 입은 열정과, 

하얀옷을 입은 순전함으로 

저 넓은 세상을 향한 빛의 시선을 멈추지 않으리.. 



# 9-2. 지평선을 보며


끝없이 펼쳐진 가로의 세계 속에서 

치열하게 세로로 살아가는 우리들..

더 높이 탑을 쌓고

더 깊이 땅을 파도 

이 길의 끝에는 가로가 펼쳐져 있을 뿐이네.

우리 삶의 끝에도 결국은 가로가 되어 저 지평선과 하나가 되겠지.. 

찬란해 보이는 세로의 빌딩숲 속에서 오늘도 나는 세로로 살아가지만

저 지평선을 바라보며 돌아가야 할 이 인생의 끝을 기억해본다.



# 10.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5시간 정도를 걸어 도착한 구룡포항.

마지막으로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둘러 보았다. 

무언가 볼거리를 위한 기대함으로 갔다면 생각보다 시시한 모습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피곤한 몸이라 잠시 쉬었다 가려던 마음으로 들어섰는데, 조용하고 정갈하게 잘 가꾸어 놓은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벤치에 온 몸을 기대며 이번 여정의 미련들을 조용히 떠나 보낸다.

구룡포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이번 여정의 매듭을 지으려고 하니, 그저 모든게 감사함으로 귀결이 된다. 


 -The End-


구룡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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