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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08. 2016

걸으며 배우는 뚜벅이여행자

(4) 포항 - 호미곶

# 6.호미곶 가는 길


오전 7:30

축산항을 출발해 영덕 해맞이공원까지 블루로드B 길을 걸으니 정오가 되었다. 

아무것도 못먹고 오전 내내 걸었더니 춥고 배가 고파왔다.

비수기시즌이라 해맞이공원은 한산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컵라면이 2,500원!! 

비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허기진 배는 25,000원이라도 지불할 태세였다. 

무뚝뚝해 보이던 아주머니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김치까지 한 접시 가득 담아 주셨다.

(맛있었는데 반이나 남겼다. 죄송해요. ㅜㅜ )

테이블이 있는 비닐하우스같은 곳에 들어가 바다를 배경삼아 국물을 한모금 들이키는 순간!! 

"으~아~" 

온몸에 전율이 왔다. 

평생 먹어본 컵라면 중에 이보다 더 극적인 맛을 본 적이 있었던가? 

추위 + 동해바다 + 배고픔 = 국물이 끝내줘요~ 


라면을 먹으며 시내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든든한 배를 채우고 나니 커피한잔이 생각난다.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믹스커피가 있다.

1잔에 1,000원!! 

헐.... 이건 진짜 비싸다... 

근데 사먹었다. 

여기서 먹는 믹스커피는 단돈1,000원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지만 컵라면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_-a )


버스가 올 시간이 가까워온다. 근데 정류장 표시가 없다.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아주머니께 묻는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가요?"

"없어. 그냥 버스 지나갈 때 손 들면 돼"

하하하... ^^;

이곳 농어촌 버스는 번호가 없다. (물론 노선은 있다.) 

그리고 정류장이 없다. (물론 있는 곳도 있다.) 

정류장이 없는 것이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불편하고 불평할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어디나 정류장이 되는 편안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없는 것들에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평생을 살아온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을,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나를 위한 곳으로 만들려하다니 부끄럽다. 부끄러워~ 


다음 목적지는 포항 호미곶.

나같은 뚜벅이 여행자에게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포항 호미곶까지는 가까운 도시라도 쉬운 이동이 아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강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포항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구룡포항에 도착. 여기서 호미곶 가는 버스를 또 1시간 기다린 후 40여분을 달려 목적지인 호미곶에 도착했다. 

영덕 해맞이 공원을 떠난지 꼭 3시간 반만이다. 

불필요하고 불편해보이는 이러한 이동 과정이 힘든 이들은 뚜벅이여행자가 될 수 없다. 아는 길도, 모르는 길도, 모든 길을 돌아가는 이러한 여정이 뚜벅이 여행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여겨져야만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또 현지인들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골목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눈으로만 멋진 풍경을 골라보는 '관광'이 아닌 오감으로 그 땅에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교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뚜벅이여행자의 사명이 아닐까? 




# 7.등대박물관


호미곶광장에 들어서니 역시나 유명한 관광명소답게 잘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뜨는 곳에, '상생의 손'이라는 걸출한 조형물까지 갖추었으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슬슬 배가고파오려는 찰나, '국립등대박물관'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입장료는 무료! 

잠깐의 고민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로 들어가 본다.  

무료라서 관리도 잘 안되고 어설플 것이라는 편견을 가득안고 들어섰는데, 이게 무슨일인가? 눈에 들어온 전시물들은 나에게 너무도 생소한 신세계를 선사해 주었다. 

'등대'라는 것의 겉모습과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만 봐왔었는데, 등대의 역사와 각종 장비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는 이 곳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등대 안에 이렇게나 다양한 기술과 장비들이 사용되고 있었다니, 예고없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우주와도 통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엔틱한 장비들과 보석같이 생긴 각종 램프들은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신선함과 신비함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전시관 밖으로 나오니 풍차를 달아야 할 것 같은 모습의 하얀 호미곶 등대가 서 있다. 

무려 1903년에 근대식 건축양식으로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럽 어딘가에 있을법한 모양인데 100년전부터 동해바다를 비추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호미곶 등대를 지나 테마공원에 들어서니 또 한 번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전국 각지에 있는 아름다운 등대들의 미니어쳐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등대들이 있었다니, 등대에 대한 무지함이 바닥까지 드러나는 순간이다.

등대박물관은 계획이 틀어진 이번 여행에서 만난 또하나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호미곶 광장에 있는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국내여행에서는 기념품에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기념할만한 무언가를 사고 싶어졌다. 

그래서 큰 인상을 남겨준 호미곶 등대가 있는 자석을 하나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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