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라 만차의 돈키호테
돈키호테가 수세기에 걸쳐 사랑받는 이유
‘돈키호테’, 황당무계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종종 사용되는 이 표현은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약 400년에 걸쳐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돈키호테는 무척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할 용기와 약한 자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이타심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돈키호테의 모험담에 대해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기사에 대한 환상에 빠진 어느 시골 귀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귀족의 이름은 ‘키하다’로 기사들의 모험담에 푹 빠져 편력기사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기사가 되겠노라 선언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것도 편력기사 (knight Errant)가 되겠다고 말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사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돈키호테’로, 자신의 말의 이름을 ‘로시난테 (Rosinante)’로 바꿔 부릅니다. 기사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기사의 명예를 바칠 레이디는 옆집에 사는 여인으로 자기 멋대로 또 ‘토보소의 둘시네아 (Dulcinea of Toboso)’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후, 그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편력기사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편력 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돈키호테는 첫 난관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자신이 기사 작위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여행으로 기사 임명을 받기 위해 그의 말인 로시난테를 타고 혼자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도착한 여관을 성으로, 여관 주인을 성주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여관 주인에게 기사 임명식을 부탁하게 됩니다. 여관 주인은 가엾은 돈키호테를 보고 그가 장난친다고 생각하여 성주의 역할로 동참하게 됩니다. 기사 임명을 위해 여관 주인은 돈키호테에게 하룻밤 동안 여관의 앞마당에서 그가 입고 온 갑옷을 지키라고 명하고, 돈키호테는 밤새 우물의 두레박에 갑옷을 걸쳐두고 지킵니다. 그 과정에서 여관에 묵고 있던 다른 이들이 우물을 사용하느라 갑옷을 치우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소동 끝에 돈키호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사 임명식을 거행합니다.
여관을 떠난 돈키호테는 농장에서 수개월 동안 품삯을 받지 못한 소년이 농장 주인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돈키호테는 분노하여 농장 주인에게 품삯을 지급하라고 호통을 쳤고, 농장 주인은 돈키호테의 차림새와 기세에 놀라 그러겠노라 답합니다. 그에 만족한 돈키호테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다시 떠나게 되고, 소년은 더욱 매질당하여 품삯 없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돈키호테는 자신의 레이디인 ‘토보소의 둘시네아’를 모욕하는 무리를 만나 명예를 위해 맞서다가 두들겨 맞아 곤죽이 됩니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던 그는 그를 알아보는 착한 일꾼에 의해 당나귀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본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이 모든 ‘재앙’이 기사 이야기가 적힌 책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돈키호테가 잠든 사이, 책들을 모두 태우고 그의 서재 문을 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책을 찾는 돈키호테에게 마법사가 모든 책을 가지고 사라졌다고 말하자, 그는 학식이 뛰어난 마법사 프레스톤 (Freston)의 소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여행은 이웃에 살던 정직하지만 약간 재치 있는 일꾼인 산초 판사 (Sancho Panza)를 종자로 데리고 떠나게 됩니다. 산초 판사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지만 돈키호테가 그에게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종자로 따라나서게 됩니다. 돈키호테는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집에 돈이 되는 물건들을 팔고 저당 잡았으며, 여행 준비가 끝나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새벽에 그의 종자인 산초와 떠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떠나는 여행은 돈키호테의 엉뚱한 모험심과 그를 옆에서 고군분투하는 산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풍차를 거인이라며 싸움을 걸었다가 나자빠지고, 목동들과 양 떼를 보며 역사적인 전투의 현장이라며 양 떼를 무차별 학살하고 목동들에게 두드려 맞기도 하고, 놋대야를 맘브리노의 황금투구라며 빼앗고, 죄수를 압송하는 행렬을 악당들에게 납치당하는 노예들이라고 생각하여 모두 풀어주는 등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벌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이 책의 11장인 ‘무사히 끝난 돈키호테와 산초의 놀라운 모험’입니다. 두 사람은 깊은 밤, 너무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초원을 지나가는데 세찬 물소리와 나뭇잎들이 내는 스산한 소리, 쇳소리에 산초는 겁을 먹습니다. 그러고는 사흘 안에 자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토보소의 둘시네아에게 자신이 기사로서 할 일을 하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해 달라는 돈키호테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주인님, 제 생각에는 주인님이 이 무시무시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밤이라서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할 테니, 얼마든지 방향을 틀어 쉽사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하니 우리를 겁쟁이로 매도할 사람도 없고요. 저는 주인님을 모시려고, 또 제게 수없이 약속했던 그 불운하고 저주받은 섬을 얻으려고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고향을 떠나왔습니다만, 지금 저를 이 황무지에 버려두겠다는 겁니까? 적어도 아침까지는 미루세요. 얼마 안 있으면 동이 틀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열망에 들떠 듣지 않습니다. 이때, 산초의 소개였던 ‘약간 재치 있는’ 그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는 돈키호테의 요청대로 로시난테의 배띠를 조이고는 당나귀의 고삐로 로시난테의 두 다리를 슬며시 묶습니다. 당연히 꼼짝할 수 없게 된 로시난테는 돈키호테가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에 산초는 자신의 기도가 신에게 닿은 모양이라며 모험을 떠나지 못해 심통이 난 돈키호테를 달랩니다. 해가 뜨고 주변이 밝아지자, 산초는 묶었던 두 다리를 풀어주고 그들은 세찬 물소리와 쇳소리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 정체는 수차로 돌아가는 빨래 방앗간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산초의 재치 있는 일면을 잘 표현했습니다. 또한 항상 돈키호테의 엉뚱함에 끌려다니던 산초가 자신의 뜻을 관철한 에피소드이기도 하지요. 또한 공포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두 사람의 말을 통해 둘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이상을 좇아 용감하게 나아가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산초는 현실적이고 피할 수 있는 위험이라면 피하자는 안전제일주의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무척 많은 일을 함께 겪고 헤쳐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모험하던 돈키호테는 결국 모험을 끝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절친인 신부님과 이발사는 돈키호테가 집에 돌아오게 하려고 모종의 계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키호테의 기사도를 자극하고자 미코미콘 왕국의 미코미코나 공주 이야기를 꾸며내고, 아리따운 여성의 협력을 통해 미코미콘 왕국에 드리워진 위협을 해결해달라고 돈키호테에게 요청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에 방문했던 여관에도 가게 되고 이전에 했던 모험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소달구지에 갇혀 집에 돌아오게 되고, 미코미 코나 공주와의 약속대로 그녀의 의뢰를 완수하기 전에는 어떠한 모험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산초는 돈키호테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고, 여행에서 어떤 것들을 얻어왔냐는 아내의 말에 외투나 신발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며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섬의 영주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돈키호테의 두 번째 여행까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돈키호테의 모험담이 유명세를 탄 이후의 이야기인 이들의 세 번째 여행이 궁금했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대신 이 책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바로 부록입니다. 이 책은 563 페이지 중 338쪽만 돈키호테 본문을 담고 있고, 나머지 225쪽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록에서는 작가와 책이 쓰인 배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몰랐을 배경들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돈키호테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본 ‘돈키호테’라는 인물은 무척 어리석습니다. 자신만의 이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고 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뛰어난 행동력을 보입니다. 설령 그 행동이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높게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기행과 줏대 있는 정의관 등, 돈키호테를 보면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떤 점들은 닮고 싶기도 합니다.
반대로 ‘산초 판사’는 현실적이고 겁이 많은 인물입니다. 폭력에 굴복하여 주인의 이야기를 쉽게 떠들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재치 있게 돈키호테를 방해하는데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걱정하고 그를 잘 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재치 있는 방해는 그의 안위뿐만 아니라 돈키호테의 안위를 위한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모험이 진행될수록 산초는 돈키호테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가 돈키호테를 통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사점은 총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산초는 왜 돈키호테를 따라나섰는가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산초였다면’이라는 생각을 무척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의 기행을 보며 그와 함께 여행하며 부끄러울 일도 힘들 일도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왜 돈키호테를 끝까지 따랐을까요?
이야기 속의 산초를 보며 어리숙한 기회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섬의 영주가 된다는 말에 돈키호테의 종자를 자청하고, 당나귀를 잃어버리자 상심한 자신에게 돈키호테가 당나귀 3마리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반드시 서명이 있는 양도증서를 써달라고 하거나, 미코미코나 공주와 돈키호테가 결혼한다면 자신에게 엄청난 이득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앞장서는 등, 눈앞에 있는 이익부터 훗날 생겨날지도 모르는 이득까지 현실성과 관련 없이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실행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돈키호테의 무모한 모험심이 산초의 행동력을 비교적 축소시켜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나선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인망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력기사를 자청하는 돈키호테의 행동을 보면 우스꽝스럽고 무모합니다. 또한 풍차를 거인, 양 떼를 군대라고 하는 등 그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 친구, 고용인, 영지민 등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그가 다치거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기사를 꿈꾸기 전의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또한, 여행이 거듭될수록 변하는 산초의 모습에서도 인망 있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문득 던지는 돈키호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산초는 뒤로 갈수록 재치가 빛나고, 말투나 행동이 좀 더 진중해지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이상과 현실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칩니다. 보통 그 선택의 순간에는 현실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선택과 이상적이지만 리스크가 따르는 선택이 주어집니다. 이 순간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저는 보통 ‘이상적인 선택’을 먼저 고려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살면서 하는 선택이 한 번 잘못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우해지거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선택’이 주어지는 순간은 그 순간이 아니라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기회’에 대한 저만의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실현 가능성’, ‘인과’, ‘가치’입니다.
선택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실현될 수 없는 선택지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이러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은 만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꿈꾸던 기회이더라도 나의 능력이나 상황적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이상적인 선택이 아닌 분별이 없는 선택이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가꿔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선택지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선택지들을 선택할 수 없었을 때의 아쉬움과 무력함을 나를 더 성장시키는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선택지에는 인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과란 선택 전과 후에 내가 감당해야 할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선택지에 쓰여있는 것만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이 선택에 의해 내가 잃게 될 다른 기회나 관계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선택에 의해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 혹은 잃게 될지도 모를 것들을 나열해봅니다. 당장 눈앞의 기회를 탐내다가 더 큰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많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중요한 기회는 기다림 끝에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제 능력보다 작은 기회를 얻어, 더 큰 기회를 잃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사소한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를 구분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저는 ‘내가 잃거나 잃게 될 가치가 얻게 될 것보다 과연 값진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선택이 가진 가치를 평가하여 구분하는 편입니다. 살면서 내가 이 선택을 해보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거나, 이 선택에 의해 내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과거의 나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한번 더 확인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기준을 통해 선택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이상적인 선택을 고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삶의 분기점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이상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전에 했던 많은 ‘현실적인 선택’들이 모여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어느 것이 더 정의로운가
돈키호테를 읽다 보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생각하는 확고한 정의가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농장 주인에게 품삯을 받지 못하고 학대받는 소년을 보고 분노하지만 품삯을 지불하겠다는 농장 주인의 말을 듣고 해결되었다며 뿌듯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이후에 소년이 더한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모르는 채로요. 불의를 보고 참지 않았지만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단순히 불의에 맞서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의란 단편적인 행동이 아닌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떠난 뒤, 그 소년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그의 모습은 정의롭다기보다는 단순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만족을 위한 정의를 실천했을 뿐 결코 소년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가 귀족이라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면 더욱이 이는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만능이 아닙니다. 무지한 행동력은 그 의도가 어떻든 문제입니다. 그의 무지한 행동력이 일으킨 사건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압송되고 있던 죄수들을 악당들에게 납치당한 노예들인 줄 알고 모두 풀어줍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하기만 해서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약자를 괴롭히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 정의로운 사람은 약자의 고통과 괴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하고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빅이슈’ 잡지와 같이, 약자들을 배려해 스스로 서고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 읽었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라는 책이 돈키호테의 어린이판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키호테 책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 권으로 읽는’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손에 잡기만 하면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돈키호테가 이다음엔 어떤 일을 벌일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많은 시사점을 가지는 돈키호테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이지 않고 모험이 진행될수록 변화하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점들이 점점 드러나고 돈키호테의 발이 닿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일어나니 다음엔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은 제가 읽기에 문체가 무척 예스럽고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볍게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어 학생분들보다는 돈키호테가 작성된 역사적 배경이나 작품관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