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에 저축이 웬 말인가
저축이라는 영역이 당신의 가계부에 있는가? 물론 나도 가계부를 쓰려고 몇 번이나 노력해 보고 요즈음은 카드를 쓰는 즉시 앱에 정보가 가서 기계가 써주는 가계부도 있지만 결국 쓰지 못하고 있다. 재테크? 책들 보면, 가계부를 써서 소비 지출을 파악하라는데, 매달 카드를 쓰고 다음 달에 고지서를 받아보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매달 비슷한 영역에 비슷한 돈을 쓰고 있다. 이건 뭐 가계부를 안 쓰려는 내 변명일 수 있으나, 어쨌든 극 문과 아니 내 전공은 종합예술인데 그게 뭐든, 숫자는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나이기에 가계부라는 또 다른 짐은 스킵하려고 한다.
매 달 처음에는 모두들 나와 같은 마음을 먹을 것이다. 다음 달 카드 값은 이것보다 적게 나오도록 아껴 써야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더 안 나오면 다행이지, 도무지 카드 값이 줄어드는 그런 환상적인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카드 값은 매 달 일정(?)한데, 더 기분이 좋고 잘 살았다고 느끼는 달이 있으니, 바로 남편 월급에 상여가 붙는 달이다. 이젠 익숙해졌는데, 남편이 이전 직장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부터 기본급이 정해져 있고 한 달 걸러서 상여가 붙고 안 붙는 월급을 받아왔다. 그리하여, 매달 예상되는 월급은 1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고정수입이 매달 100만 원 이상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일이며, 관리하기 어려운 일이다. 매달 카드 값은 100만 원 더 나오는 달을 기준으로 몸에 익혀 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카드를 쓰다가 이번 달은 상여가 없는 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남편에게 야근이라도 더 하라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재무나 회계 쪽은 경영학과를 한 학기밖에 안 다녀서 잘 모르겠지만, 1년의 총급여를 12분의 1로 나눠서 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처음에 고정관념이나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자 미션이라고 했는데, 방금 내가 이야기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 가정에 맞는 경제적 지표를 발행해 내는 것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아껴야지 아껴야지 아끼는 방법이 있을 거야 라고 나를 쪼아 대는 것과, 벌어야지 벌어야지 더 벌어서 메꿔야지 하는 것이다.
두 가지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껴서 모을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벌어서 모을 수 있는 것도 구멍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축이라는 개념을 무조건 아름답게 바라볼 필요도 없고 맹신할 필요도 없지만, 무시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직 애기가 없고 맞벌이여서 한 달에 5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씩 적금을 하실 수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차피 여러분들도 아이를 낳고 잠정적으로 외벌이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 기준으로 말해 보겠다.
옛 어른들 말씀에 애기 없을 때가 돈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야 라는 말은 백 번 논해도 맞다. 나에 대해서는 안 쓰려면 안 쓰고도 사는데, 아이에 대해서는 절제라는 단어의 브레이크가 거의 먹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게 외벌이든 맞벌이든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가능한 저축액도 줄어들고, 그에 따라 목표를 줄여야 하는 것도 맞다.
가끔 부동산 카페에서 애 키우면서 월급 모아서 3년에 1억 모았어요. 이런 애기 보면서 자괴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아주 아주 극히 드문 케이 스니까 말이다. 대기업 맞벌이도 저렇게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달에 얼마를 저축한다면, 현재 보다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꿈꿔 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매달 10만 원이다. 아니 최소 2만 원. 1년 모아도 24만 원인데, 그걸로 어떻게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죠 라는 질문을 따라올 것이다.
솔직히 저축이라는 단어가 저 세상 이야기 같고, 매달 마이너스만 면하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 달에 30만 원씩 저축하세요 라고 재테크 어드바이스르 하는 건, 고문이다. 마음만 무거워질 뿐이다.
실제로 남편이 첫 직장에서 @@보험에서 복리 적금이라고 한 달에 30만 원씩 내는 걸 덜컥 들어왔다. 몇십 년을 가지고 있으면 몇 억이 된 다나 뭐 라나. 몇 달 내다보니 영유아 2명을 키우는 중소기업 외벌이가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남편은 저축은 필요하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1년을 내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해지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두둥 계약 유지를 위해 들었던 설계비를 공제하고 준다는데, 200만 원을 공제하고 100만 원만 환급이 된다고 했다. 원금은 손실하지 않고 찾으려면 7년을 더 부어야 한단다.
물론 이런 내용은 약관에 나와있었겠지만, 우리는 수업료라고 생각하며 200만 원을 버리고 해지하기로 했다. 물론 200만 원은 큰돈이었지만, 그 뒤로 더 확실히 깨달았다. 세상에 공짜는 물론 없고, 뭘 쉽게 더 준다는 말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위에서 말한 2만 원은 아무 통장에나 매달 2만 원씩 넣으라는 것이 아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또 많이들 실수하시는 바로 청약통장에 넣으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위에 남편의 직장이라고 말했던 중소기업은 우리가 결혼하고 한 참 뒤에 이야기이다.
결혼할 시절로 돌아가자면, 외벌이라는 표현도 과분했다.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남편은 생소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한 달에 백만 원 미만을 벌고 있었다. 부모님과 살 때도 대단히 넉넉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상대적 빈곤을 체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을 디테일하게 모르는 엄마는 저축은 하냐고 물으셨다.
허허허, 헛웃음만 짓는 나를 보고 엄마는 가난할수록 저축을 해야 한다며, 남편 명의로 주택청약을 가입해 주셨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통장은 돈을 뺄 수는 없는 통장이란다. 당분간은 엄마가 10만 원씩 적선해준 다니 그냥 고맙습니다 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얼마 뒤, 반 전세 계약의 끝이 보이고 있었고, 전세시세는 폭등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500만 원-1000만 원 정도 올려주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그때 3000천-4000천이 오르는 분위기였으니, 지금 보면 우습겠지만, 그땐 말세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