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 집은 어디에] 구축 아파트

구축 아파트

by 스테이시

월세 10만 원. 그때는 전세가 아니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이 계약을 해야 되나 엄청난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신도림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축 아파트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혹 있었어도 나는 쫄보여서 구경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 키즈 (태어나서부터 아파트에만 살아온 세대)였던 나였지만, 소위 말하는 새 집에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분양의 모델하우스나 친구 집에도 딱히 가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딱히 새집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뭐가 좋은지도 몰랐으며, 내가 살게 될 미성을 왜 구축이라고 선호하지 않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미성 아파트는 그때도 재건축 기대감 때문에, 리모델링해서 사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 집은 주인이 계속 임대용으로만 돌리는 집이라서, 리모델링까지는 아니어도 손 본 흔적이 있는 집이었다. 워낙, 작고 아담한 집이어서 외부로 나 있는 창문은 큰 거 하나였다. 창이 적은 덕분에 겨울에 바람 들일이 없어서 굉장히 따뜻한 겨울을 보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도배를 하고 가구를 들이면서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하고 이런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무한 감격하고 있을 때였다.


문제의 그 날은 구매하면 추첨을 통해 이승기가 축가를 불러준다던 그 냉장고가 우리 집에 온 날이었다. 이승기가 축가를 불러주면, 남편보다 멋질 것 같아서 신청하면 안 되겠는데 라며 농담을 하고 있을 때 그 문제의 냉장고가 등장했다.


기사님들은 박스 포장을 장렬하게 하나씩 제거하자 엄청난 떡대의 냉장고가 등장했다. 신혼가구는 거의 다 엄마의 취향이었다. 처음에는 내 의견을 반영하려고 시도하다가 그냥 웬만한 건 엄마가 선택하게 놔두었다. 첫 딸의 결혼은 엄마의 로망이다. 엄마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 취향들이 아니어서 현재 그중 세탁기 냉장고 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 냉장고를 냉장고 장에 넣으려고 할 때 우리는 깨달았다.


냉장고보다 그 공간이 작다는 것을 말이다.


충격이었다. 냉장고는 기술을 발달 덕에 계속 뚱뚱해지고 이었다. 우리 집이 아무리 리모델링이 된 집이라고 해도 2CM가 부족했다. 냉장고는 이곳저곳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고, 결국 귀가 예민하신 남편 덕에 하나뿐 인 방안에 넣어야 했다. 방문을 뜯고 냉장고를 분리하고 난리를 쳐서 넣어 놓고, 우리는 주방 겸 거실에서 생활을 했다. 이것이 나와 구축 아파트의 첫 인연이었다.


사실 구축 아파트(1990년대 혹은 그 이전)가 삶의 편리함에 있어서 신축 혹은 2000년 이후 준공된 비교적 신축에 비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위에 내가 말한 부분은 전면적 리모델링을 한다면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구축의 화룡정점은 주차장 문제 일 때가 많다. 지하주차장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목동에 지인 집에 놀러 갔다가 난 주차장에서 간단한(?) 사고를 겪었다. 차들이 엄청나게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고 2중 주차는 기본이었다. 차들은 또 이렇게 비싼 차들만 서있는지.


난 주차공간을 위해 다른 차를 밀고 있었는데, 그곳이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이었는지 차가 뒤로 구르기 시작했다. 근데 띠용 그 뒤에 보이는 차가 엄청 비싼 차였다. 이제야 거기 왜 벽돌이 있지 하며 치웠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기에 순간적으로 난 내 다리로 바퀴를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바퀴는 내발을 타고 넘어가서 뒤차를 향했다. 다행히 어느 지점인가 차가 멈추긴 했는데, 정말 목동이 좋은 곳이고 그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야 살 수 있는 집이었지만 다치고 나니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집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 사는 분들은 매일 그 주차장을 견디는 것보다 차를 없애는 건 어떨까라는 주제넘은 생각도 해보았지만, 구축 아파트에 사는 것도 전세든 자가든 다 이유가 있고 그런 것을 몸테크라고 한다더라. 몸으로 낡음을 견뎌내면, 언젠가 돈이 벌어지는 구조라는 소리이다.



목동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우리는 미성에서도 했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 매번 10분 이상 소요해야 했고, 주차라인도 사선으로 그어져 있어서 남편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차는 아주 오래된 가스 차라서 추위 가운데 세워 두면 엔진이 얼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얼어 있는 엔진을 깨우려면 새소리 같은 소리가 나서 터지는 거 아니야 라며 늘 불안했다. 언젠가는 애기를 태우고 몇 백 미터 가다가 차가 멈춰서 길 가운데 세워두고 남편이 집으로 달려가서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엔진에 부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다. 비 오는 날은 비랑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비 오는 날 에피소드도 있다.


우리 집에서 엄마 집, 친정까지는 차로 10분 내외였다. 첫 반 전세 기간 내에 첫 아이가 태어났고, 친정 옆 육아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왔다. 아기가 열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계속 울었다. 뭐지? 기저귀? 분유? 졸림? 음 ~계속 씨름을 하다가. 혹시 후덥지근해서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가도 아닌 30년 된 아파트에 에어컨을 달 계획은 1도 없었다.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로 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계속 울자 엄마의 도움을 받으러 엄마 집으로 건너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비는 오고 우산은 받쳐 들고 아기띠에서 아기는 울고 미로 주차장에서 차를 간신히 찾아 간격이 좁은 데 억지로 몸을 들이밀어서 타는데, 애기는 카시트에 앉혀야 하겠고 난 비를 쫄딱 맞고, 아 놔. 그날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은 착각도 해보았다.


엄마 집은 지하주차장이 있어서 한결 수월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엄마 집에 딱 도착하자마자, 아기가 울음을 그쳤다. 그 녀석은 그냥 더웠던 것 같다. 후덥 지근이 싫었나 보다.


그 해 여름, 그렇게 나는 에어컨이 없는 원룸 형태 집에서 애를 키우면서 아이가 극도의 짜증을 낼 때마다 시댁 친정으로 에어컨 피신을 다녔다. 나를 눈칫밥 먹이는 아이가 얄밉긴 했지만, 그래도 피신할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의 사치스러운 투정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지금도 아주 땀을 많이 흘리고 여름에는 방에서 잠을 못 자고 에어컨 앞에 나와서 잔다.


애증의 구축 아파트이다. 그 뒤로도 나는 여전히 그 가격에 그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지만, 우리 아이는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는 것을 (^^;) 알 수 있었다. 상상은 자유니까, 다음번에 이사를 간다면 꼭! 지하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 다짐을 해보았다.


그런 곳에 가게 되는 오기는 올까? 한 달에 얼마를 모으면 좀 더 나은 환경에 가서 살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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