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몇 달 전부터 추석이 지나면 출장을 간다고 긴장을 했다. 출장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평소보다 더 멀리 간단다. 그리하여 방금 전 그는 '프라하'에 도착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종종 겪던 비행기 멀미도 안 하고 잘 도착했다고 한다. 그렇게 짧은 톡을 주고받았지만, 그가 내 옆에 없던 나의 하루는 결코 짧지 않았다.
평소에는 남편이 옆에 있어도 예쁘다거나 우리가 서로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결혼 10년이 다돼서야, 아, 이 친구가 생각보다 나의 마음과 머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워낙 씩씩한 사람이고, 남편의 부재 기간 동안 내가 애들을 조금 더 보면 된다는 수고로움만 생각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하루를 지내보니 평소에 내가 하지 않아서 걱정했던 아이들을 재우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나머지는 다 어려웠다. 밤이 되자 아이들은 '엄마 졸리지? 우리는 책 읽고 잘게 먼저 자." 라며 더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를 누워서 정리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일단 늘 출근할 때 남편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주었는데, 오늘은 나의 몫이어야 했다. 그 일은 일단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25일이기 때문에 내야 하는 학원비, 월세 등 여러 금융업무 처리 또한 내가 어색하게 처리해 나가야 했다. 휴, 그러고 나서 절정은 오후 3시였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고 개인 핸드폰도 있지만, 가방에 교문에 들어왔습니다 나갔습니다를 알려주는 장치가 들어있다. 그런데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아이가 교문밖으로 나왔다는 문자가 나에게 왔다. 그때 당황스러움은 진짜 패닉이었다. 설사가상으로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내가 해야 할 다음 액션은 아이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는 남편 핸드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놀란마음을 진정시켜줄 남편이 비행기 안에 있다는 것은 나는 아이의 위치추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조퇴를 하고 찾으러 뛰어가야 되나 별 생각이 다 들 때쯤, 문의드렸던 돌봄 교실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과학실험 시간이라 운동장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가방을 메고 운동장에 나오니 자동 메시지가 발송된 것이었다. 휴. 아이는 몇 분 지나서야 "엄마, 왜 전화했어?" 라며 연락이 왔다. 나는 아이를 잃어버렸을 까 봐 걱정했던 마음과 앞으로 더 잘해줘야지 했던 마음을 담아 그 녀석이 "엄마, 햄스터 키워도 돼? 선생님이 오늘 나눠주신대."라는 말에 평소의 신념과 다르게 허락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남편의 빈자리가 크다는 생각을 했는데, 퇴근 후 둘째 학원에 결제하러 갔다가 학원 시간을 바꿔야 할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게 여러 학원이 물려 있으니 바꾸는 결정 또한 복잡했다. 평소 같았으면 "1번 안과 2번 안 중에 당신 생각은 어때?" 하고 메시지를 보냈겠지만 어제는 오롯이 내가 선택해야 했다. 평소에도 어차피 내가 선택을 하지만 남편의 수긍 및 응원 그리고 공감이 없으니 뭔가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휴, 그렇게 하루를 마치는 가 했는데, 첫 째의 수영 보강 수업 건으로 수영 선생님과 연락을 하는 게 어제 마지막 임무였다. 보통은 아빠가 아이를 셔틀을 태우고 받기 때문에 모든 연락이 아빠 번호로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한 마디 덧붙어야만 했다. "선생님 내일만! 엄마 번호로 연락 주세요."라고.
와우, 남편에게는 이런 하루를 지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단지 나와 아이 둘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냈을 뿐이다. 늘 내가 씩씩해서 혼자 이것저것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의 부재 하루, 이제 막 하루가 지났다. 나머지 며칠 동안 몇 번이나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