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것은 원래 엄마의 꿈이었다.
우리 집은 계속 책을 사고 절대 버리지 않는 엄마 덕에 늘 좁게 느껴졌고, 한 번 책을 펼치면 밤을 새우고 우리가 뒷전이던 엄마 덕에 어릴 적 책에 대한 내 마음은 솔직히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엄마가 읽은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엄마를 더 엄마의 세계로 고립시키는 것 같았던 것은 그냥 내 느낌이었을까?
공무원으로 안정적이었지만, 일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던 시대적 서러움을 엄마는 다른 것으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듯했고, 엄마는 누구도 자신을 비웃지 못할 정도의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해 보였다. 그러다가 원효사상이라는 불교 사상중에 하나에 심취해서 일인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가졌던 것 같다. 지식의 최고봉에 서서 인정받아보려던 엄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였고 아빠가 사회, 경제적으로 어느 위치에 접어들자 엄마는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간절함에 매진하기보다는 아빠로 인해 대리만족을 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 선택도 엄마에게 행복일 수 있다고 응원했다.
그러나 엄마는 늘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었다. 때로는 다단계 같은데 휘말리기도 했고, 앱을 개발해야 된다고 했다가, 한자를 외워야 한다고 했다. 즉, 무언가 하나에 미치도록 간절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성격 덕분에 밝게 지내오셨다는 것이다. 자식으로서는 이제 나이가 드신 부모님에게 바랄 것이라고는 그렇게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정도였달까.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갑자기 한 마디 하셨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게 1년 전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얼마 전 쌍둥이 동생도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엄마 나름 무언가를 생각하셨나 보다.
" 내가 글을 더 잘 쓰는데.. " ^^
그렇다. 어디서부터 갖게 된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내 생각에 엄마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엄마가 작가가 되고 싶어 했고 등단(?)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지 않았었나 생각을 해 본다. 맥심 문학상 장려상을 받으신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난 엄마가 곧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내가 먼저 책을 내게 될 줄이야. 가족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가 계약을 한 날 계약서를 사진으로 찍어 가족 톡방에 올렸더니, 다들 반응이 시원찮았다. 특히 엄마는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딸내미니까 기특하기도 하면서, 글이라면 내가 더 잘 쓰는데.. 하는 마음 그리고 엄마의 오랜 꿈이었던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 그 불씨까지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브런치부터 시작해봐 라는 말을 건넸는데, 시큰둥하던 엄마가 이제 쌍둥이 동생까지 브런치 작가가 되고 녀석의 재테크 이야기가 포털에 오르내리자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으셨나 보다. 작가 신청에 대해서 물어보시길래, 동생과 나는 엄마가 이미 신청했다가 몇 번 떨어졌나 보다 했는데 아직 신청도 안 해보셨단다. 음, 그럼 해보고 떨어지면 그때 물어보거나 글을 바꿔보는 게 어때 라고 하자 이 글로 신청하려고 하다며 짧은 글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나와 동생이 브런치 작가 심사 담당자의 마음을 다 알 길이 없으나, 동생은 나름의 답답함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엄마, 글이 너무 어려워."
철학에 종교학에 몇만 권이 될지도 모르는 책을 읽은 엄마의 글을 읽고있자니 내가 무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최대한 친절히 이야기해 보았다,
"엄마 철학자 아저씨 말 말고, 엄마의 생각과 마음이 담기면 어떨까?"
그때 동생이 한 마디 던졌다.
"엄마, 엄마 글에서 엄마는 숨어 있어. 최대한 감추려고 하고 있다고."
엄마는 이내 곧 인정했다. 나이도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 이 정도 고상함을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쓰면서 문장을 계속 수정했단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본인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읽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참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래도 곧 브런치 작가에 똑똑 문을 두드려 보실 것 같다. 동생은 자신이 한 번 떨어져 본 적이 있는데 그거 떨어지면 마음이 상한다며 엄마에게 한 번에 붙을만한 글을 준비하란다. 하하하. 그래도 엄마가 브런치 작가가 돼서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되시길 응원하고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는 아이들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내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엄마를 이해 못하며 컸지만 어느새 보니 나도 내 동생도 엄마를 닮아 책을 먹어치우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심지어 엄마가 어릴 때 키워주신 우리 딸도 할머니를 담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만큼 엄마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여전히 대단하다.
작가, 그것은 엄마의 꿈이었는데 멋진 직장으로 엄마의 자랑은 못되어드렸지만, 책을 내서 얼떨결에 작가가 되어버린 내가 먼저 그 길을 가게 되었고, 그 영향 덕분인지 마케팅을 하던 동생도 글쟁이로서 커리어를 브런치에서 이어가고 있다. 아마 이 속도로 글을 이어간다면 그 녀석도 조만간 책을 하나 내지 싶다. 더 나아가 우리 딸내미 꿈도 동화작가이다. 이렇게 보면 엄마가 심은 글에 대한 애착, 그 씨앗은 잘 자라 가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한번 불러본다. 명 작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