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에 낯선 봄방학

by 스테이시

"어쩌다 오늘이 학기의 마지막 날이 되었네요. 한 학년이 이렇게 마무리되어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 친구에게 봄방학 끝나고 오면 형님반에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고 전해주세요.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


이 전화를 2월 24일에 하게 되다니,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전화를 받으신 스무 명의 어머님들의 반응 또한 모두 당황 그 자체 셨다. 영어유치원에 봄방학이라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든 새로운 학사 일정이었다. 영어유치원 그리고 봄방학 이 낯선 조합의 만남을 코로나는 기어이 해내고 말았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근무 중 비상 문자를 보니 우리 원이 있는 지역이자 내가 사는 동네에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가 왔다. 그 문자를 보자 왠지 천진난만하게 공부하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을 다음 주에는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다가왔다. 난 선생님이기 전에 애기 엄마라서 일까, 그 문자 하나에 오늘이 이 녀석들과의 마지막이라는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혼자 수료증, 수료 사진, 편지, 선물 등 마지막 날 보내는 것들을 보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원에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어 아이들이 'See you next week!'이라고 손 흔드는 것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아이들이 하원 한 뒤, 이 지역의 확진자가 추가로 나왔다. 그 다음날 한 명이 또 추가되었다. 전국적으로는 갑자기 몇 백 명 단위로 늘어나는 숫자는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새 학기 일정에 변동이 없다던 교육부에서도 하루 만에 개학 연기를 실시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 가운데 막내 어린이집에서 3월 6일까지 휴원이라는 연락이 왔다. 국공립 어린이집, 사립유치원까지 휴원 소식이 들릴 때쯤, 그럼 영어유치원은 이라는 화두가 지역 카페, 교육 카페를 장악했다. 학부모님들로서는 당연한 관심사이자 기대였다. 그러나 어느 영어유치원이 휴원 한다더라 소식이 들여오기 시작한 것은 한 참 시간이 지난 다음 날부터였다.


나도 아이 엄마로서 휴원 조치가 필요함에 공감했지만, 운영자 입장에서는 휴원 처리를 해주면 교육비를 환불해준다는 의미이므로 많은 머리가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혼자 생각했다. 정황상 어차피 휴원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이럴 때 먼저 쏘쿨하게 '저희 원 2주 휴원 합니다. 원하시면 환불하거나 교육비를 뒤로 미뤄드립니다.' 리고 선방을 날리면 학부모님들의 신뢰와 이미지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할 찰나에 우리 원에서 공지가 떴다. 우리는 방역을 아주 잘해왔고, 확진자 발생 해당 동이 아니고 ( 직선거리 백 미터 옆 동인데...), 워킹맘들에 대한 배려로 휴원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아이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휴원 하면 돈 관계가 복잡해지므로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셈이었다. 그 뒤 컴플레인이 빗발친 것은 당연했고, 결국 몇 시간 뒤 휴원 조치를 하기에 이르렀다. Y계열사는 휴원 한다는데, 어느 원은 한다던데, 많은 증거로 잽을 맞은 후에야 휴원은 결정되었고, 참 찹찹했다. 비단 우리 원만의 문제는 아녔으리라. 인터넷에서는 휴원 관련해서 한 발 빠르게 연락이 온 원들과 그렇지 않은 원들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더 부각된 사실에 씁쓸해야 했다.


영어유치원은 영어학원이라는 것


교육기관이니 교육 기관답게 해 주길 바라는 기대치도 너무 이해가 되고, 이익창출이 1순위인 집단에 손실이 명백한 일을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평소에는 영어유치원이라고 부르며 정체를 나름 숨겨가는 것에 용이했으나 코로나가 만든 시국 앞에서 영어유치원은 영어학원에 유치부라는 정체성을 들어내고야 말았다. 영어유치원을 보내시는 학부님들도 알고 계셨던 일임에도 우리가 마주한 영어유치원 봄방학이라는 일정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렇게 어제 우리 선생님들은 출근을 했고, 나의 사랑스러운 삐약이들과는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텅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짐을 챙기며 일 년을 함께한 추억들이 나를 찾아왔다. 내일이라도 아이들이 와서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안아주지도 못한 아쉬움은 꽤 오래갈 것 같다. 마음은 무 자르듯 끝낼 수 없어도 봄방학에 대한 서류적 조치는 해야 했다. 무급휴가신청서가 우리 앞에 내밀어졌다. 그냥 사인을 했다. 원래 이런 건가. 몇몇은 관련 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으나, 그러기엔 우리의 너무 마지막 날이었다. 갑자기 생긴 봄방학은 우리의 퇴사 날짜를 이르게 만들어 주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하니 본인 회사는 단축근무를 실시하기로 했단다. '어머, 단축 근무하면 월급 차감 안되나?' 물었더니 외계인 취급을 한다. 아, 그렇지. 내가 일하는 곳은 학원이지.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은 헌신적인 유아교사로 또 전문적인 영어강사로 두 가지를 채우려 애쓰며 일은 한다. 그래서 우리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잊고 마음에 품은 아이들로 울고 웃는다.


봄방학, 봄을 기다리는 어느 시기, 우리는 곧 봄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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