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년 2개월이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혹시 무얼 뜻하는지 아시는 분 계실까요?”
그건 내 친구들이 겪은 일이었다. 내가 군대라고 대답을 하자. 학생들은 “저분은 대체 몇 년 생이길래” 라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마스크 덕분에 나이를 추측 당하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내가 이 과정에 등록한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 나는 최근 학원에 등록을 했고 배우는 과목은 작사이다. 수강생 중에 많은 분들은 문예창작과 대학생이었고, 회사원 아가씨들도 있었다. 아마 애 둘에 결혼 10년 차인 아줌마가 이 과정을 함께 듣고 있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4곡의 연습 가사를 쓰면서 마지막 연애는 10년 전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내 꿈은 시인, 극작가, 작사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계속 바뀌어 왔지만, 지금 돌아보니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길이가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의 작업을 하고 싶어 했지만, 자신감을 잃은 채 써내려 갔던 글들은 내 인생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변명처럼 길어지고 말았었다. 감사히 첫 책을 낼 수 있었지만, 소위 팔리는 책이 되지 못한 탓에 내가 글에 재능이 없는가 보다 하는 자책도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생업을 해왔었고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래 라는 위로로는 안주할 수 없었다. 그 절실함 또한 무뎌져 갈 때 쯤 문뜩 잊고 살았던 꿈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학원 등록은 정말 즉흥적이었다. 인터넷에 작사 학원을 검색했고 집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덜컥 등록을 했다.
그렇게 작사 학원 기초반에 간 첫 날, 난 두 가지 난관을 만났다. 첫째, 마지막 연애는 10년 전 남편이고 지금은 우리 집에서 야식을 먹으며 배 나온 아저씨가 되어 가는 상태라는 것이다. 설렘이나 애절함이 무엇이었더라. 두번째 고민은 첫 날 선생님께서 성공한 작사가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알았다. 그 중에 한 명이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임을. 그 친구는 자신의 재능에 일찌감치 집중해서 성공을 이루었는데,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보겠다고 이 스펙 저 스펙으로 발버둥 치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이뤄 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위축되었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 도전을 멈출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다시는 용기 낼 계기조차 잡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작사가는 가이드 앞에 평등하다 라는 선생님 말씀과 나의 글의 힘을 한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매주 가이드를 받아 한 주에 한 곡의 가사를 완성하여 제출하고 있다. 첫 주에는 기억을 비틀어 메마른 감성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첫사랑 그분이 생각나는 역효과가 있어서 그 방법은 딱 한 주만 썼다. 마침 그 주가 그 분 생일이기도 했다는 변명도 추가해본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작사 팁은 그 가수가 된 것처럼 빙의해서 써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이유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해 볼 때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하는 가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작사 과제를 완료해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혹평을 선사했다. 그 이후 계속 보여줬더니 그래도 매주 좀 더 노래 같아지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었다. 작사는 글보다는 노래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책을 쓸 때는 고상하게 카페에서 썼는데, 가사는 노래를 부르면서 써야 해서 방구석에서 쓰고 있다. 방에서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괜찮은 가사가 써진 것 같은 느낌이 오면 뭔가 금광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그 한 마디 한 구절이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렇게 작사라는 아이와 밀당 중이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시작 할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부끄럽지만 시작에 대한 설렘을 표현한 나의 과제곡을 들려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 내 고민 거린 유일해
바로 너 와 나 우리 사이
늘 우리 거릴 고민 해봐
다가갈까 기다릴까
널 어쩌다가 만나면
너무 설레서 자꾸 실수하나 봐
네 마음은 어떨까 자꾸 궁금해 미치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