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작사가가 되려고 할까?

작사 학원 5개월 차에 접어들며...

by 스테이시

다음 주부터 나는 중급반이다. 뭔가 중급반 정도 레벨이 되면 멋진 가사를 짜잔 하고 뽑아낼 줄 알았는데 멋진 작사는커녕, 지난주 제출한 과제까지도 얼마나 많은 지적을 당했는지 모른다. 물론 내가 작사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서 첫 번째 쓴 곡부터 아무 손댈 곳이 없네요 라고 피드백을 받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이거 계속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 것 같다.


사실 그간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지난달 담당 선생님께서는 3번이 진행되는 피드백에서 첫 번째 시간부터 혹평을 쏟아 내신 덕에 한 달 동안 기가 팍 죽어서 눈치를 보며 썼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학생으로서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어려워하는 장르가 연습곡이었을 수도 있고 직장 프로젝트로 밤을 새우느라 집중을 못한 것도 이었겠으나 결국 그 화살은 내가 이것에 재능이 있나 라는 질문을 향하고 말았다.


고작 4달 배워놓고 재능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 일 수 있으나, 가끔 같은 반 학생 중에 언어에 마술을 부린 것 같은 단어를 들고 오시는 분을 보면, 한 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돈을 내고 취미로 배우려는 게 아니라 데뷔를 목표로 더 나아가서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공부라는 점에서 부담감을 쉽게 내려 놀 수 없는 것도 있다.


초급반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고민들이 나를 채우고 있는 걸 선생님도 아셨을까? 어쩌면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이쯤에서 많이들 그만두셔서 그런 걸까? 선생님께서는 중급반에 올라가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한 마디를 남기셨다.


"중급에 가시는 여러분이 할 일은 버티는 겁니다. "


얼마 전에 김이나 작사가님이 펴내신 책에서도 비슷한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내 지난날들엔 비굴하고 비참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시선도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으로 나가면 게임이 끝나는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 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 없다.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中) "


내가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는 아닐지라도, 갈고닦아 놓으면 수요가 있는 가사를 쓰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간신히 내 글을 내가 믿어주는 게 먼저다라는 마음을 다잡아 놓았다. 그러던 차에 글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왜 작사를 고집하는가 라는 질문도 마주해 보았다. 저작권료? 상상만 해도 좋지만, 그건 돈의 다른 이름이고 내 가슴이 뛰게 만들 능력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그럼 무엇일까? 왜 나는 굳이 작사가 지망생이 되어 내 언어를 연단하는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으실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나를 그 순간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마법 같은 노래를 마주하는 순간 말이다. 그때 그 순간을 추억할 때, 그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보다 그 날짜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나에게는 그때 그 노래였다. 한 때 대중가요에 너무 심취해서 나도 한 번 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닌 적도 있었는데 특기에 작사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썼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당돌했구나 싶다.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시던 늘 당부하는 말씀은 음악을 많이 들으세요 인데, 노력은 한다. 하지만 사실 내 귀는 여전히 나의 학창 시절에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사이트에서 Top 100을 들으면 요즘 노래가 귀에 어색하게 느껴지고, 90년대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착착 귀에 잘 들어 올 수가 없다. 어제는 코요테의 노래를 듣다가


"니가 나가줘 내 맘속에서 나 혼자 널 지워 내기가 힘들어"


이 가사 하나에 "대박"을 연발하고 말았다. 그때는 너무 감정에서 심취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널 잊고 싶어'라는 말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삼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는 것과 별개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뭔가 아직 작사가가 되진 않았지만 작사가라는 직업에 사명감이 몰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나의 모든 청춘의 순간마다 B.G.M으로 불릴만한 테마송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 글에 다 소개할 순 없겠지만 이런 가사를 쓰기를 욕심낸다는 차원에서 한 곡만 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금씩 내 마음이 움직여- 너를 만난 뒤에-

이렇게 내가 시작해도 될까- 다시 사랑이란 걸- (샵 '사랑할게')"


와, 가사의 매력을 너무 잘 나타난 곡인 것 같다. 가사를 쓰면서 새삼 알게 되는 건데 정말 저 몇 글자 안 되는 자수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를 써야 한다. 작사라는 작업에 감정이 충만하면 필이 있으면 되지 않나요 라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직접 해보니 음악이라는 의뢰 고객님께 맞춤형 자산 매니징을 해드리는 것 같은 느낌에 지배당할 정도로 계산이 많이 들어간다. A4용지로 두어 장 밖에 안 되는 글자에 마음을 접어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 것 같은데 기획을 잘해보면 마음이 들어가고 더 잘 기획되면 감정이 들어갈 자리까지 만들어진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위에 가사로 돌아가 보자면, 저 가사가 두줄인데 담고 있는 이야기가 어마어마하다. 일단 내가 널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랑을 했는데 그게 잘 안됬어서 다시 사랑이라는 것은 안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널 만나는데 마음이 아무리 막아보려고 해도 네가 조금씩 좋아지는 걸, 이제 우리 시작해볼까? 와우, 이 노래 전곡을 듣지 않았는데도 첫 소절에서 연애 시작합니다 라는 마음과 설레 죽겠습니다 라는 감정까지 다 담아냈다. 진짜 "대박"이라는 환호성이 나올만하다. 실제로 저 곡은 나의 18살 겨울을 뽀송뽀송하게 해 주었던 곡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18살 때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마음속에 있었을 텐데, 내 말로는 차마 엮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이 노래를 만났을 것이다. "어, 이거 내 마음이잖아." 그 발견은 내가 말로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어쩌면 영영 묻힐 뻔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쓰였던 유일한 도구 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금 더 나이도 먹고 능글맞아져서 조금 더 할 줄 아는 말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음악을 빌어 마음을 표현한다. 지금껏 수많은 작사가분들의 글을 빌려 인생을 버텨온 것들에 감사를 표하며, 나도 그런한 글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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