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가 되기 위한 현실 즉시
중급반에 들어서자 현타가 제대로 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들께서 "물론 사람마다 더 잘하는 장르가 있긴 있지만 모든 장르를 다 쓸 수 있어야 해요."라는 말에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을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고민했던 분야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학원을 고를 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등록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다녔던 학원이 특정 회사 아이돌에 집중된 곳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만큼 무모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 달 선생님께서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쓰면 XX에서 싫어해요. "라고 말하실 정도였으니 확실히 어느 방향으로 써야 잘 쓴다 아니 먹힌다는 것은 나름에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께서 덧붙이신 말은 "학원에 다니면 자수(글자 수)도 딸 수 있게 되고, 세련된 표현도 배우죠. 그런데 수료할 때쯤 되면 다 가사가 비슷해지는 점은 분명히 있으니 주의하세요."였다.
아이돌 노래를 쓰려고 작사를 시작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시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백악기 시대의 나는 서정적이고 멋진 곡을 만나서 필! 나는 작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못한다 못한다 하니까 정말 퇴보하던 나의 댄스곡 가사들을 마주하던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내가 재능이 없다고 판단해서 발을 빼거나, 아직 이 과정에 입문하기 위해 쳐보지 않은 발버둥을 해보는 것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자존심이 말랑한 탓에 후자로 방향을 잡고 첫 번째 액션을 취했다.
뮤직뱅크를 검색해서 최근 회차를 본 것이다. 20년 전에 나는 뮤직뱅크를 줄줄이 꿰고 있는 한 소녀였으나, 아직까지 뮤직뱅크가 하고 있구나 라는 것에 한 번 놀랐고, 그 무대들을 보고 또 놀랐다. 뮤직뱅크 동영상과 엑셀을 켜놓고 그룹별로 분위기 및 자주 등장하는 가사를 적어보려던 나는 첫 번째 질문에서 막히고 말았다.
"와우! 애네가 몇 명이야?"
그룹명이 세븐틴이면 17명이라는 애긴가? 화면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세다가 다 못 셌는데 17명까지는 아닌 것 같았는데 하고 검색해보니 13명이란다. 아하. 몇 명인지 세다가 노래를 못 들었다. 하하하.
이렇게 몇 그룹을 보고 나니 약간 과장해서 엄마 된 심정으로 "아이고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어린 친구들 중에 극소수만 데뷔를 하고 또 그중에 극소수만 성공을 하는구나."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꿈을 찾아 방황하는 30대 주제에 분야를 정해서 올인하고 있는 10대에게 꼰대 짓을 할 입장도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
내 학창 시절에도 선정적인 가사들이 있긴 있었는데, 요즘 노래는 반 이상이 호감까지도 도달할 시간을 주지 않는 순간적 쾌감에 대해 논하고 있는 걸 보면서 괴롭기도 했다. 내가 생각할 때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이 우려될 만큼이라고 판단이 돼도 그게 상업적인 가치를 이끌어 낼 만한 먹히는 곡이라면 그 부작용 정도는 개인이 감당해야 되는 영역이 될 테니 말이다.
얼마 안 있으면 중학생이 될 내 아이가 들어도 괜찮은 가사를 쓰고 싶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초급반에서 썼던 과제곡 중에서 설렘 단계를 쓴 곡이 있었는데, 나도 맘에 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첫사랑 전문"이라는 콘셉트를 잡을 수는 없나라는 웃픈 생각도 해보았었다. 뮤직뱅크를 데이터 분석하듯이 분석하려던 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남편이 한 마디 했기 때문이다.
"엑셀로 켜서 3분 안에 어떻게 정리하냐? 듣고 맘에 드는 노래 있으면 제목을 적어두고 분석은 나중에 해."
오! 대박. 그렇네. 일단 내가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노래를 찾는 게 먼저겠다. 세상에 수많은 노래가 존재하지만 모든 가사가 다 잘 쓴, 아니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는 가사는 아닐 테니 말이다. 그 한 마디에 또 열심히만 하려던 나를 멈출 수가 있었다.
이 나이에 뮤직뱅크를 검색해서 찾아볼 줄은 몰랐다. 선생님 말씀처럼 글 쓰는 것 좋아해서 글 잘 쓴다고 착각해해서 온 사람 중에 하나였던 나에서 온 몸으로 변화를 마주해보고 있다. 도전은 불편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즐길 줄"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음악 그리고 인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