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tness

by 스테이시

작사 학원을 시작한 지도 이제 7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다.


이 정도 다니면 근사한 곡 하나 뚝딱 뽑아내려나 했는데 왠 걸, 2차 슬럼프를 맞이하고 있다. 초급반 선생님께서 계단처럼 느는 거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시지 않았으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3월에 같이 시작한 동기들은 다들 어떤 마음으로 이 과정들은 지내고 있을까? 이미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실까? 학원에서 끈끈한 동기애 같은 것은 가질 시간은 없었지만, 중간에 학원에 바꾼 통에 가끔은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다 경쟁자 일 수도 있지만, 도전이라는 것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한 조각의 격려가 암묵적으로 되니까 말이다.


가사를 쓰고 피드백을 받고 그 피드백이 녹아들기 전에 또 가이드를 받고 또 가사를 쓰고 지금 내가 연습하는 건 빨리 써내는 속도인 건가 싶기도 하다. 회사가 끝나면, 집에 와서 잠깐 아이들의 숙제를 봐준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9시. 그때 노래를 아무리 크게 틀어도 졸음이 쏟아진다. 하얀 화면에 한 글자가 쭉 찍 힐 정도가 되면 자야 된다. 써야 된다는 압박에 노래를 틀어놓고 잠들거나 안경을 쓰고 잠들기도 한다. 보통 새벽 2시쯤 다시 일어나서 나보다 곤히 잠든 노트북을 깨운다. 노트북도 주인이 야속할지도 모르겠다.


노트북보다 더 미안한 건 남편이다. 남편은 비싼 취미생활한다고 생각하라며 작사를 즐기라고 했으나, 성격상 그렇게는 못하기에 회사 앞 뒤 시간을 작사와 글쓰기에 쓰고 있다. 모든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를 하고 나를 응원해준다. 뭐, 이런 천사표 남편이 있나 싶다. 그런 짝꿍한테 덜 미안해지고 싶어서라도 빨리 더 잘 쓰고 싶은데 마음만 앞선다.


음악 프로도 더 봐야 하고, 아이돌 가사 필사도 하면 좋겠고 방법은 다 알면서 내가 게으르고 바뀌기를 싫어하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원과 작사를 병행할 수 있는 건가 라는 고민은 데뷔 이후에 하면 되겠지만, 더 공을 들여서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은 시간의 한계에 잡힌다. 어느 곡은 앞부분에 칭찬을 받다가도 뒤에 가서는


"여기서부터 시간이 없으셨나 봐요."


라고 듣기 기도 한다. 하하하. 정말 귀신같이 안다. 나도 다른 사람 과제를 보면 그런 게 보인다. 시간이 모자라서 여기 못 바꾸셨나 보네. 제출하면서도 찜찜한 그 기분 너무 잘 알기에 말이다. 슬럼프라고 말하면서 하는 말로는 조금 우습지만, 작사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아직 배워가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부족한 것이 명백하지만 도전을 이어가 보고 싶다.


사실 학원에서 주시는 가이드는 대부분 EDM이 많다. 어느 날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남편이 '그거 지난주 노래 아니었어?'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물론 다 다르지만 또 다 비슷하기도 하다. 지난주에는 비슷한 노래를 계속 들으니까 감정이 마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 없이 칸수 채웠다가 혼났다. 그럴만했다. 인정!


요즘 내가 마주하는 내 고비는 너무 단정하고 납작한 글을 생산하다는 것이다. 책을 쓸 때 어떤 단어도 어떤 이의 감정을 건드려서 논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말 애를 썼는데, 생각해보니 가사에도 그런 단어를 기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착한 척하느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내 글이 그냥 나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괴롭기도 했다. 그 납작함이 나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입체도형이 되면 모 났다고 할까 봐 바닥에 엎드린 평면도형 같다.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 중에 꼭 적용하고 실천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이 노래 나보다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불러줄 거예요. "라는 부분이다. 글과 나를 분리하고 작사는 더더군다나 팔기 위해 쓰는 글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될 것 같다.


이 과정들도 느껴지는 것이 너무 많지만, 정확한 건 내 가사가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생각의 범위, 단정함의 정도, 입에 담지 못할 말들, 갈등의 실감 그리고 시간을 쪼깨기의 달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던 순간들도 참 많은데, 긴 글을 쓰다가 호흡이 짧은 글을 쓰는 것이 다른 머리를 쓰는 것이 되고 내 머리 버전 변환이 빠르지 못해서 오고 가질 못하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무언가 늘 결정해야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설레었는데, 일단 더 내 세계를 깨고 나오는 인풋을 주사할 것을 결정하는 정도의 일이라면 올 겨울은 좀 더 무난할지도 모르겠다. : )


그나저나 매일 EDM 듣다가, 임창정 신곡 들으니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언젠가 이런 곡들을 만날 날도 오려나, 봄엔 오려나.

#꽃길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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