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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Jul 28. 2021

엄마가 그랬다. 나는 느리다고.

레이트 블루머 by 리치 칼가아드

태어나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말 중에 하나는 "쌍둥이로 살면 어때?"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질문자들은 마치 내가 쌍둥이로 사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이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답정너 짓을 나에게 했다. 나는 이 질문이 어려웠다. 아니 대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내 동생, 가족이 한 명 더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사회는 혹은 친척들은 쌍둥이라서 뭔가 더 특별한 삶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글쎄, 어떤 면에서 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라고 싱겁게 대화를 종료하곤 하는 나지만, 그 보다 더 오래전부터 우리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을 원치 않으셔도 비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같은 날 태어난 아이 1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날 태어난 또 다른 아이는 며칠이 지나도록 기어 다닐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팩트 2줄을 써놓은 것이지만, 이 두 줄을 읽은 대한민국 국민은 수능 준비를 했건 안 했건 알 수 있다.


그럼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는 빠른 거고, 다른 아이는 느린 거네 라고 말이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마무리 지으셨다. "동생이 기는 것이 부러워 보였는지 너는 몸을 옆으로 굴리기 시작했지 뭐니. 하하하. "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장면을 엄마는 생생하게 살려주셨다. 실제 내가 그때 어떻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습은 '느린 아이는 빠른 아이를 부러워한다.'라고 무난한 결론을 제시했다.


동생은 그 뒤로도 빨랐다. 아, 그리고 지금도 빠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줄넘기였다. 국민학교 시절 줄넘기를 연습해야 했는데, (수행평가였을까?) 동생은 하루 만에 넘는 법을 마스터해버렸다. 그리고 동생이 쌩쌩 소리를 내며 줄을 넘을 때 나는 엇박자의 점프를 뛰느라  꽤 오랜 기간 줄넘기 줄이 선사하는 바람을 맛보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해주었다.


"너는 뭐든지 조금 느리긴 하더라. 그래도 나중에는 잘하게 될거야."


위로였을 것이라 믿는다. 엄마도 한 날에 태어난 두 녀석이 왜 이렇게 다른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릴 때는 저 문장에 앞 쪽이 내 머릿속에서 더 큰 왕좌를 가지고 있었다. 에코처럼.


"느리더라. 느리더라. 느리더라. 느리... 더.... 라."


느리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기준으로 내가 사회 전반을 따라가기에 모자라다는 건가라는 의문까지 연결되었지만 일단 확실한 건 내 동생보다 느린 것 사실 었다. 외동이었으면 아니 내 옆에 같은 날 태어난 아이가 없었으면 나는 느리다는 꼬리표를 안 붙일 수 있었을까 고민도 했었지만, 느리건 사실이었다.


엄마의 말의 뒷부분을 곱씹어 보게 된 건 한참 뒤였다. "그래도 나중에는 잘하거야." 서른이 넘어서도 이 말은 나에게 큰 짐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라도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나는 잘하지 못하고 살아 낸 오랜 기간에 눌려있었다. 엄마가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인간 구실 못하다는 애기는 듣지 말아야지 라며 내게 연료를 들이붓고는 했다.


참 그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오늘 읽은 이 책 레이트 블루머에서 묘사한 이 한 구절에 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따라서 레이트 블루머(늦게 잠재력을 펼치는 사람들)들의 입장에선 새로운 의지와 굳은 결심으로 더 많은 훈련을 받고 더 많은 학자금 부채를 안는다 해도, 얼리 블루머(레이트 블루머의 반대말) 컨베이어 벨트 위로 다시 오르는 일은 말도 못 하게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컨베이어 벨트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돌아간다. "


나는 최근까지 얼리 블루머 인 척 삶을 개조하고 싶어서 여러모로 애를 썼다. 첫째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기업에 있는 내 친구들도 회사에서 나올 시기가 멀지 않은 나이인데, 이제 와서 혹여나 들어가도 말단 사원이 돼야 하는 회사원 말이다. 누가 날 붙잡고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회사원이 별거 있냐 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멀쩡한 직장에 명함 한 번 파보고 싶은 마음은 로망이라면 로망이고 욕망이라면 노욕 같은 것이었다.


한편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있는 분야에 열정을 쏟은 탓에 이 분야에서는 벌써 내년 오퍼도 들어오고 있건만 못내 그래도 회사원이 돼보고 싶은데... 세미 정장을 입고 목에 출입증을 걸고.. 내 책상에 앉아 타이핑 소리 들리다가...'회의하러 가시죠.'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현실적인 내 동생은 사회는 다 똑같다며, 지금 사무직으로 가면 지금 같은 대우라도 받을 것 같아 라고 해준다. 맞다. 이게 현실이다.


10년까지는 아니지만 꽤 오랜 단절 끝에 나는 전공과는 다른 일을 시작했고, 운명적인 일이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바닥부터 버텨온 탓에 팔자에 없던 팀장님 소리도 듣고 있다. 그게 멋진 회사에서 회의를 주도하는 멋진 팀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이 너무 잘 맞는다는데, 이 일을 잘하는 모두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라며 혼자만의 객기를 삼켜본다. 콜라 한잔을 온 더 롹해서 마시면, 며칠은 묻어 놀 수 있는 욕망이랄까.


그렇게 나는 가끔 일탈을 꿈꾸며 이력서를 쓴다. 현재 산업과 다른 회사원의 일에 말이다. 현재 일 특성상 1년 단위의 계약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극단적인 행위라서 금기시되지만, 이런 짓이라도 해야 숨이 쉬어질 때도 있었다. 나는 원래 전공의 결을 따라 마케팅을 백그라운드 한 카피라이팅 포지션에 도전을 해보고는 했는데, 서류 불합격이라고 보내주는 것조차 친절하게 느낄 정도로 감사히 현실을 체감하고 있기는 하다.


같이 사는 사람 왈, "우리 회사에서 그 나이 사람의 이력서 받으면 미안하지만 읽어보지도 않아. 소싯적 화려한 스펙이어도 아무 소용없어." 그렇구나. 새삼. 내 마음이야 언제나 활화산 같지만, 사회에 해석되는 내 이력서는 위의 글을 따라 '얼리 블루머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굴러 떨어진 지 오래된 제품'이라고 해야 할까.


좋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우리 엄마 말처럼 느린 사람이다. 멋지게 이미 자신들의 삶은 일부분 건축한 분들을 경외한다. 부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분들 또한 다른 방법과 다른 시기에 녹록치 않은 댓가를 지불했음을 말이다.


"결국 잠재력 있는 레이트 블루머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발견의 길을 찾아야 한다."


라고 이 책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대부분 버렸지만 아직도 모서리를 잡고 있는 다짜고짜 회사원이 돼보고 싶은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더 곤고히 할 것은 누군가는 믿어야 한다. 누군가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나라도 믿어야 한다.




나는 씨앗이고, 그 씨앗이 언젠가 만개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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