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이 떨어지는 부반장

by 스테이시

그 해에도 나는 전학생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그분은 편애가 무척이나 심하셨고 촌지를 환영하시던 분이셨다. 본인이 예뻐하는 아이에게만 교과서를 읽을 수 있는 발표 기회를 주시던 그분은 우리 부모님이 촌지를 드리지 않자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신 것 같았다. 나는 MBTI를 하면 INTJ에 I가 80% 넘게 마크되는 사람이니 그 때라고 더 활발하거나 싹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 10년 넘게 살면서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문제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과목별 평가 도덕 과목에


“사교성이 떨어집니다.”


라고 써 놓으신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 충격은 흡사 지구에 지진이 난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말고도 그 문구를 받은 친구들이 있었다. 촌지를 건네지 않은 수더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이라는 말을 저렇게 써 놓으셨 던 것 같다. 어른이 돼서야 이렇게 이해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무언가 심각하게 하자가 있는가 보다 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반 아이들 모두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지 못하다는 뜻일까? 그때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하늘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책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니, 내가 우리 반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해? 내가 반장도 아니고…… ’

‘내가 선생님이 예뻐하시는 주인공 아이처럼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써야 해?’


워낙 소심한 탓에 이런 생각이 말로 발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더 말이 많고 활발하고 더 넓은 친구 관계를 맺는 사람을 더 좋은 사람이라고 암묵적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는 것을. 좋은 사람 측에 들어보려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크게 내 성격을 바꿀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내성적인 나 자신을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요즘 말로 outgoing 하지 않은 내가 나는 싫었지만, 일대일로 있을 때 보이는 특유의 진정성 때문인지 내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게 생겨서 인지 반장선거에 나를 추천하는 아이들은 종종 있었다. 그 시절 임원은 공부도 어느 정도 컷 안에 들어야 했고, 잘생기거나 예쁜 아이들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만약 내가 임원이 된다면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느낌이 될 터였다.


다만 내가 부반장이 되던 그 해 담임선생님께서 약간 특이하셨다. 남자 후보 둘이 강대 강으로 붙는 선거가 펼쳐졌는데, 남자 둘이 임원 하는 것이 싫다고 몇 표 되지 않았지만 여자 중에 표를 가장 많이 받은 나에게 부반장을 하라고 하셨다.


그때 순간 망했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교성 없는 부반장을 보유한 우리 반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리드하는 것은 약했지만 책임감이 무척이나 투철했던 나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 선생님께서 급 공지하신 미술 재료를 알려주기 위해 우리 반 아이들 주소목록을 들고 집집마다 찾아가서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위대한 책임감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워낙에 쑥스러운 고로,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남자아이들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기가 어찌나 어려웠던지.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 해에 내가 모두에게 오지랖 넓게 말도 잘 붙이고 사근사근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임원의 역할을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 해에 나의 유일한 업적은 하필 반장이 결석한 날 새로 오신 과목 선생님을 앞에 세워두고 장터 같이 떠들던 반 아이들에게 차렷 경례를 외친 것이었다. 진짜 얼굴이 터질 뻔했지만 그 선생님이 두고두고 기억해 주셔서 땅굴로 숨고 싶었던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아, 한 건 더 있었는데 그날은 남자 애들끼리 주먹으로 때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중에 힘이 센 아이가 반 문을 닫으며 선생한테 고자질하는 X은 죽이겠다고 했다. 반장은 구경을 하고 있었고, 그때 맞고 있던 아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교무실로 내달렸다. 나한테도 해코지를 할까 무서웠지만, 한 주먹 거리도 안되고 존재감 없는 부반장 따위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고마웠을 따름이었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그만큼 작았던 나는 활발하지 못한 채로 사는 것이 괴로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전학 가면 처음부터 활발한 이미지로 굳혀서 살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그런다고 내 성격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이런 나를 용서한 것은 시간이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격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할 수 없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도 쓸모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정하고 있다. 시끄럽지 않은 것이, 파티 인맥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신은 나에게 말하는 능력 대신 글을 쓰는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말을 할 때 보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우습게도 글을 쓰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글을 쓰는 것이 좋은데, 갑자기 글이 주목받아서 인싸가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말이다. 글이 널리 읽히는 건 정말 기쁠 것 같다. 그런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근데, 계속 그렇게 돼야 계속 글을 쓸 기회가 보장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안다.


늘 사교적이어야 된다는 것에서는 자유하지만, 어느 타이밍에 그나마 있는 사교성을 끌어다가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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