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칼로 물 베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아예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끼리는 몰라도 이미 뚜렷한 색채가 있는 성향의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부딪힐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런 영역을 소위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른다. 믿음은 때로는 근거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믿기 때문에 그 근거가 보이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평소보다 더 조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종교보다 더 극명히 입장이 갈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부동산과 정치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돈을 벌어 자립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립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자면, 우리는 돈을 벌어서 어딘가에 쓴다. 그게 어른의 특권이라면 특권이고 무게라면 무게일 것이다. 돈을 어디에 쓰는 가는 그 사람이 어디에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장 명백하게 들어내 주는 방법이다.
돈을 처음 벌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돈을 술에 쓰고, 어떤 사람은 차에 쓰고, 또 어떤 사람은 저금을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저금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무겁다. 요즘 말로 돈을 모은다. 시드 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드머니가 생기면 주식, 코인, 경매 등을 시작할 수 있게 되고 인생의 투자라는 개념이 스며들어 오기 시작한다.
이 단어는 매우 뜨거운 감자이다. 투자. 여러분은 투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느껴지는가 아니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이 관점에 따라 이후 정치적 성향까지 가늠해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쪽이 더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다른 방향을 선택하면 아무리 학창 시절에 동거 동락했던 친구일지라도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일단 누군가 집을 샀다고 가정해 보자.
"야 집값 떨어질 건데 지금 사서 폭락하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집 가격에서 반으로 떨어져야 해. 지금 다 거품이야."
이 상황에서 집을 산 친구, 집을 사지 않고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둘 다 내 친구라면 나는 어느 쪽의 바람이 이뤄지길 응원해 줘야 하는 걸까? 집 값은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때마다 부동산이라는 화두를 제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면, 친구사이는 어떻게 되게 될까? 그러므로 부동산에 대한 입장이나 선택을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면 나누지 않는 편이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는 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사를 하거나 그런 큰 일들은 또 숨겨지지 않는지라 결국 애기가 나오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는 친구들과 더 오랜 대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부동산이라는 주제는 실체라도 있는 주제이지만, 정치 애기는 더 답이 없다.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가 고정 값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 내가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실리라는 단어만 쥐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뒤집힐 듯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지금의 사회가 보호되고 유지돼야 된다는 것도 철저히 이기적인 입장이기에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도 편치 않다. 우리는 계속 입장이 변할 수밖에 없다. 돈을 벌 때 랑 벌지 않을 때랑 집이 있을 때랑 없을 때, 아플 때와 아프지 않을 때 나라는 사람은 다 다른 관점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어느 쪽이고 이 쪽이 맞다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여 그쪽이 아닌 측과 관계를 단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너무 이상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삶과 상관없는 안건으로 날을 세우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보다, 그 정치인이 실현하고 주장하는 가치를 내가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고 하고 살면 더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무엇이 더 어려운 일이었을까 돌아본다. 어느 쪽 정치인이 더 맞는 말은 하는지 분별하여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분을 지지하는 것과 내가 주도적으로 가치를 실천하여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작게나마 일조하는 것 중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