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만나, @ Zoom

by 스테이시

우리는 친한 친구의 기준을 여러 곳에서 찾고는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기준을 하나 이번 장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로 집을 공개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집에 가보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더 세밀하게 알게 되며 가까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요즘은 유명인들 자신의 집을 공개하면서 대중들과 더 친근한 친구 같은 이미지를 세팅하려고 한다.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의미한다. 집에서 잠만 자는 사람부터 집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프리랜서까지 집의 활용도는 다 다르지만, 일단 집은 내가 이 사람과 아는 사람인지 친구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가지고 있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이 수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에 더 슬퍼한 쪽은 어른들보다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호감 표시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아이들이 친구가 되고 싶은 혹은 친구에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안이었는데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어른들은 영화 보자, 밥 먹자, 이따 톡 하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관계를 이어가지만 아이들에게 최대의 호의이자 유일한 호의일 수 있었던 영역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 코로나는 수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중에서도 혹독한 변화를 예고 없이 맞이해야 했던 영역이 바로 이 친구라는 영역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친구와 친구 비슷한 그 언저리 누군가를 가지고 있었는데, 코로나는 한 방에 후자를 정리하게 해 주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게 되었고 사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일 깨워 주었다. 직계 가족들과도 거리두기를 해야 했었으니 말 다했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은 없었지만 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돈과 시간이 절약된다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했던 것이 아니었으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절 현상들은 조금씩 복구되기 시작했다.


한 번은 1:1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왔었는데, 하필 그날부터 열이 나는 것이 아닌가? 진짜 1년 가까이 아무도 따로 만나지 않다가 갖은 만남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 것인가 라는 자책은 새벽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날 샐 때까지 주차장에서 대기하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목이 많이 부었단다. 휴. 그나마 감사했지만 일대일 이어도 다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해에는 단톡이 있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잡았다가 취소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코로나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하던 것을 맞춰가며 모임을 구상하던 우리는 이내 다 같이 얼굴 보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친구가 말했다.


"우리도 정모 하자. Zoom에서."


그날 밤 11시 우리는 급 다 모였다. Zoom에서 말이다. 다들 한 손에는 종류가 뭐든지 한 병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안주를 들고 있었다. 다 같이 모여서 치킨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어느 날 밤처럼, 우리는 몇 시간을 떠들었다. 발표 기회가 돌아가면서 주어진 것도 아닌데 다들 끼고 빠지기를 조절해 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헤어질 때는 모두의 멘트는 똑같았다.


"우리 진짜 얼굴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코로나로 막혀 있으나 단절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면대 면 만남은 어느새 2년이 다되어 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치킨 값으로 모은 회비에 이자가 붙어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더 오래 친구일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낌없이 주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