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미생

4화

by 스테이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때가 있었어.


삶에 가장 열정적이던 시절,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했어. 저녁엔 집안일을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어.

하루를 꽉꽉 채울수록,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믿었어. 자신만만했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자만했어.


그래서였을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심해 보였고, 도와달라는 말은 게으름처럼 들렸어.

하루를 꽉 채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라며, 성숙하지 않은 마음으로 손가락질을 해댔어.

그들의 지치는 하루를, 무거운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경험 없이 좁기만 했던 나의 세계 안에서 편견은 더 단단해졌어.




그러던 나에게도 또 다른 경험이 찾아왔어.

예고도 없이 무기력이 불쑥 찾아왔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갯벌에 다리가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어. 몸은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어.


그때 나는 바라보고 있었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미추미생의 이치를 모른 채 사람을 판단하던 나를.


내 기준 안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신뢰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잃었을 순간들을 나는 모른 채 살아왔을 거야.


그렇게 무기력은 내가 믿던 세계관을 단숨에 부숴버렸어.

그 세계는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거운 고물덩어리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어.

세상에는 애초에 판단받아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오늘도 온몸이 축 늘어졌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루.

한때 내가 쉽게 던졌던 말들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고 있어.


“밖으로 좀 나와.”

“… 담에.”

“담에 언제?”

“… 힘들어.”

“안 힘들어. 자꾸 힘들다 하니까 진짜 힘든 것 같지.”

“……”


귀찮은 전화, 문자,

자꾸만 뭘 같이 하자는 너.


그러고 보니

너도 아직, 미추미생이구나.


조금 더 살다 와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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