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에겐 역할들이 있었어.
엄마
딸
누나
학생
선생님
학부모
직원
무엇하나 제대로 잘하질 못하는데,
내가 가진 역할들은 자꾸만 늘어났어.
하나라도 더 하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면,
한번 더 웃고, 한번 더 숙이면,
무탈한 듯 무탈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갔어.
더듬더듬 앞도 안 보이는 곳에서 조심조심 한 발씩 내딛으며,
앞인지 뒤인지도 모른 채, 계속 발을 옮겼어.
가만히 있어봤자 날 데리고 나가줄 사람은 그곳에 없었고,
그리고 난,
엄마였으니까.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무작정 들어갔던 칵테일바,
서로에게 귓속말을 하며 웃음을 건네고,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
잔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바텐더 손에서 능숙하게 만들어지는 칵테일.
회사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올라왔어.
그날 칵테일을 하나, 둘 마시며 다시금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생각했어.
나에게 큰 사치였던 칵테일 두 잔의 기억이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
칵테일 바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며 내 이름을 불러봤어.
엄마나 딸이 아닌, 학부모나 직원이 아닌 그냥 나 자신.
내가 가진 그 멋진 이름을.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걸었어.
여전히 엄마로, 학부모로, 직원으로, 딸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