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7화

by 스테이시

그곳의 긴 소파의 끝자락에는 늘 그렇듯 [chillpill]이라고 쓰인 귀여운 알약모양의 쿠션이 자리하고 있다.

두 손을 맞잡고 있던 내가 쿠션을 슬쩍 만졌다.

알약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부드러운 쿠션이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지난번에 우리가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얘기했었는데, 그 후로 뭔가 달라진 거 있었어요?”


“… 뭐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는 어때요?”


“… 그냥 똑같아요.”


“아이하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어요?”


“… 아직.”


“아직도 아이와 이야기를 함께 해보는 게 부담스러워요?”


“…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아직까지는. 그다지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끼겠고.”


“지난번과 비슷하네요. 그렇죠”


“… 아이에게 짐만 될 뿐이죠. 굳이 아이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


“아이가 짐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엄만데 짐이 좀 되면 어때요?”


“… 싫어요, 짐이 되면 내 아이가 힘들어요.”


“아이와 함께 서로 좀 나눠가지면 덜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나눠가질 필요도 없는 걸 뭣하러.”


“아이가 몇 살이었죠? 열여섯 살?”


“열일곱 살이요.”


“아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죠? “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해요. 십 대 아이들이 하는 그런 것들요. 친구들을 만나고, 집보다는 밖을 더 좋아하고.

굳이 아이의 생활을 방해하면서까지 나 좀 봐달라고 구걸하고 싶진 않아요.”


“아이가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상담사는 잠시 말을 쉬었다. 나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쉬어주는 건지 아닌지, 상담사는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아이는 잘 지내니까 그거면 돼요 저는.”


“약은 어때요? 요즘 잠은 잘 자요?”


“… 뭐 그냥…비슷해요.”


“기분은요?”


“… 그냥…비슷해요.”


“이제 곧 약 리필 할 때가 다가오네요, 그렇죠?”


“…….”


“… 약 잘 먹고 있어요? “


”……. “


“… 안 먹은 적도 있어요?”


”……. “


”바빠서 잊어버릴 때도 있고 그렇죠, 그렇죠? “


”……. “


”약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


“….. 약을 먹으면 그날은 기분이 우울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닌데, 우울하진 않아요.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혼자 흥얼거리기도 해요.”


“차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 네”


“어땠어요?”


“이상했어요.”


“약이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 그렇죠?”


“…근데, 그러다가 약을 안 먹으면 못 살게 되는 순간이 올 것 같아서. 나 혼자서는 나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나는 약을 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나는 어떻게 되나요?”


“…..”


“… 약을 먹기 전에는 운전을 하고 있으면 앞에 있는 차를 박아버리고 싶었어요.

신호를 무시하고 벽이 있으면 차를 갖다 박아 버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약을 먹기 시작하고, 운전을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


“….. 무서웠어요… 이러다간 약을 끊어낼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죠. 약에 의존하게 될까 봐 오히려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요….

그런데 약이 스테이시 님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건 아니에요.”


“……”


“감기가 걸리면 우리는 낫기 위해서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잖아요.

약의 힘을 잠시 받아서 푹 쉬고 나면 다시 우린 원래의 컨디션으로 다시 돌아오죠. 지금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면 어때요?

잠시 나른해진 마음을 편안하게 쉬게 해 주기 위해 잠시 약을 복용해 보는 거예요.”


”…..”


“약은 언제든 끊을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약에 중독성은 전혀 없어요. 내가 스테이시 님을 만날 때마다 상담을 통해 현재의 상태를 확인할 거예요.

스테이시 님이 약에게 지배당하게 두지 않을게요. 그게 의사로서 내가 할 일이잖아요.”


“…..”





“그래도 약이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 그렇죠?”


“…. 네“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약 리필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괜찮죠?”


“…. 네.”


“좋아요, 그럼 우리 2주 뒤에 또 만나요.”


상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데 오후의 빛이 창문사이에 살짝 걸쳤다.

하얀 크록스 신발에 색색깔의 핀을 주렁주렁 달은 간호사가 내 옆을 바삐 지나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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