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빼고 흐르는 하루

9

by 스테이시

새벽에 일어나면 학교수업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내려주고 나면

땀을 뻘뻘 흘리며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방을 들춰매고 캠퍼스를 가로질러 뛰었어.

아이와 함께 집에 오면 그때부터 학생들이 과외를 받기 위해 집을 들락거렸고,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가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그러다가 같이 잠이 들기도 하고.

나의 하루는 그렇게 온종일 나를 빼고 흘렀어.



학교에서 면접 연습을 하는 날이면

보잘것없는 나를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땀에 절은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스커트를 차려입고,

발뒤꿈치를 다 까먹고도 성에 차지 않는 싸구려 하이힐을 신고

수없이 웃는 연습을 하고, 손이 닳도록 다른 사람들의 손을 맞잡고 흔들어댔어.

너무 세게 잡아도 안되고, 너무 흐느적 거려고 안 되는 악수의 법칙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한 장이 빼곡히 채워진 이력서를 수많은 회사에 올렸어.



다른 학생들의 이력서는 내는 회사마다 딱딱 붙는데,

내가 보내는 이력서는 내는 회사마다 쭈욱 쭈욱 밀려났어.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흔들리지도, 주저앉지도 말라고

오히려 나는 나에게 으름장을 피웠어.


매일 구인광고를 뒤지고, 매일 이력서를 구겨 넣었어.

나의 이메일은 불합격을 알리는 쓸데없는 편지들이 차곡차곡 쌓였어.


나는 정말로 괜찮았어.




…..

괜찮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그러다 어느 날



뭔가 툭,

몸안을 흐르는 회로가 끊긴 것 같았어.

눈앞이 캄캄했어.



그렇게

나는

갑자기

멈췄어.



갑자기

밑으로 푹 꺼졌어.



문득,

쉬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대로 이렇게,

그냥

이대로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꺼낼 용기가 없어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서,

정작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하던 나는,

멈추지도 무너지지도 못한 채

캄캄한 어둠 속에 그냥 그렇게 있었어.




죽으면,

눈치 보지 않고 쉬어도 되지 않을까.



쉼이 무서웠던 나는 그렇게

죽음의 주위만

뱅뱅 돌고 있었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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