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찍기
5년 만의 해외여행이다. 코로나로 출산으로 육아로,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의 한 복판에서 고군분투하며 지냈다. 사주팔자 4개의 기둥마다 역마살이 끼어있다는 나는 타의에 의해 멈춰있던 시간 동안 의식하지 못한 채로 메말라가고 있었다. 반 강제 생일선물로 탈취한 휴가를 일본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를 설득했다. 그렇게 떠나는 값진 3박 4일이었다. 온전히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뿐인 너무나 기다린 여행. 떠나는 날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어제 밤늦게까지 내 짐보다 더 공들여 싼 아이짐을 엄마에게 맡겼다. 남편과 단둘이 공항버스를 타자마자 기절하듯 잤다. 기대와 다르게 공항에 도착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비행기를 탄 후에도 아무런 설렘이 없다. 일본에 도착한 후의 열차 티켓팅이나 환전 출금 등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수와 실패들에 과한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집을 나선 지 12시간 만에 도착한 숙소에서 몰려드는 피로와 짜증을 몰아내고 밥을 먹었다. 숙소 바로 앞 늦게까지 문을 연 라멘집의 첫끼가 기대이상으로 맛있어 약간의 기운이 솟았다. 소화도 시킬 겸 거리를 걷는데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여행지답지 않게 어둡고 적막한 그 고요에 이제야 여행온 실감이 났다.
다음날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데로 걸었다. 일본의 휴일이 겹쳐 가는 곳마다 사람이 무척 많았다. 북적이는 거리를 빠져나와 가모가와 강변에 털썩 주저 않아 멍하니 강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바람소리 물소리 낯선 언어로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펑펑 울었다. 남편은 묻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왜인지도 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자니 어느 순간 납득이 갔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구나. 감정을 순수하게 터트릴 수 있는 순간이 필요했구나. 엄마로 아내로 선생으로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는 일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표 하나 찍기가 참 어려웠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말간 개운함이 찾아왔다. 말없이 기다려준 남편과 그 감정을 공유하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여전히 목적지는 없다. 다만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하루밖에 남지 않은 너무나 소중한 나의 여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