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따로 잡을까?"
"아냐, 지낼 곳이 있는데 뭣하러~"
"그래도 귀한 연찬데 서운하지 않겠어?"
가끔 평일에 하루라도 같이 쉬고 싶지만 일하는 패턴이 달라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오랜만에 연차를 쓰게 된 나는 남편의 자취방을 숙소로 잡았다. 코로나 핑계도 있었고, 혼자 오랜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게 부담스러워 자주 가보지 못했다.
주말부부의 처지는 '진짜 집'이 어디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자취를 하는 그는 출근길은 물론이요, 퇴근길은 더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어떻게든 본집으로 왔기 때문에 내가 움직일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생각지 못하게 주말부부의 삶이 연장됐고 그 방에도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짐을 꾸려 남편의 출근길에 함께 차로 이동하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 잠깐 흩날리는 눈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내리는 눈은 처음이었다.
"그래 이게 낭만이지, 별거 있나~"
그의 특유의 긍정적인 말 한 마디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눈 오는 날의 낭만적인 드라이브가 뜻 밖에 선물이 됐다.
다음 날,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강한 바람 소리에 묻혀 버리고 귀가 빠알갛게 얼 정도로 매서운 날씨였다. 곧 헤어질 시간이었다.
남편은 혼자 장거리 버스를 타는 내가 체하기라고 할까봐 걱정이 됐는지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서 가방에 넣어주었다. 안 그래도 짐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급하게 먹은 아침식사에 속이 좀 메슥거리는 것 같았는데 부부라고 어련히 알고 챙겨준 게 고마웠다. 씩씩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대합실 한편에서 남편을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성큼성큼 걸어가 버스를 탔다.
'앗차, 먼저 가라고 할 걸.'
먼저 가라고 그의 등을 토닥이며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게 웃으며 보내고 왔어야 했는데, 되려 휙 돌아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를 탔으니 남겨질 사람을 배려한다고 멀리까지 와서는 영~ 마무리가 훌륭하지 않았다.
한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 햇볕에 반사되는 새하얀 눈밭을 구경하다 몰려오는 피곤함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이렇게 또 며칠간 혼자 잠을 청하다 보면 그를 다시 볼 수 있다. 휴가와 일상의 모호한 경계가 버스를 타고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 모리아(Moria) - 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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