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고 있었다. 여섯 살 남짓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형물 곁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고 나는 무심코 그 남자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이내 동그란 조형물 위로 올라탔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문득 스산한 느낌이 들었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찰나에 아이가 돌덩이에 머리를 박고 울고 있는 모습이 스쳐갔다. 나는 누군가 넘어져 피 흘리는 상상을 할 때면 온몸이 저려오곤 하는데 이번에도 참을 수 없는 소름이 귓불을 타고 올라왔다. 이어 흐느적거리는 내 어깨 위 솜털들도 제각기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열 걸음이나 걸었을까? 우왕- 갑자기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왔던 길을 돌아보니 아이는 바닥에 넘어져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깜짝 놀란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달랜다. 시간에 쫓겨 나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내 저린 마음을 두고 왔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엄마에게 전화해 이야기하니 엄마도 젊었을 때 나와 같은 일들을 겪었다고 한다. 엄마는 종종 예지몽도 꿨는데 실제 장례식에 갈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두려운 마음에 큰 이모와 점집에 찾아갔다가 신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엄마. 그렇게 신병을 물리치기 위해 엄마는 두 차례 굿을 했고 약 일 년간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았다고 하니 하마터면 엄마는 무당이 될 뻔한 게 아닌가?
나는 어렴풋이 그때의 엄마를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일주일 정도 엄마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무슨 신병이람. 하지만 다행히 나는 신기가 약한가 보다. 그 후로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