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회고] 내가 원하던 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퇴사 부검 첫 번째 일기

by Stan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 그렇다고 침몰하는데 가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를 되짚은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생각도 마음도 조금은 정돈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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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성이 도를 지나쳤었다'


얼마 전 어느 블로그에서 본 스타트업 회고록에 있던 표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모든 것이 처음인 이 회사에게 매끄러운 경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의 공백이 생길 때면, 모든 일을 내 것처럼 생각했었다.


위기 때마다 서로 쓰러지는 기둥 하나씩 붙잡고 주말에도 밤새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행복했었다.


0에서 1을 만든다는 자긍심이 우리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희생에 대한 빚을 보상받는 날이 올 것이라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내가 잘못된 신념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되짚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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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은 밖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뛰어난 인재들은 저절로 세상이 알아준다는 좋은 의미로 쓰인다.


나는 예외였다.


내 성과와 그로 인한 영향력이 커질 때마다 나는 점차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회사라는 주머니를 쿡쿡 쑤시고 있었다. 대표는 회사와 제품이 성장하는 것보다 나를 견제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았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함께 일한다는 즐거움이 나에게는 가장 큰 힘이었다. 내가 있어 든든하다는 말, 이 회사에서 이런 대우 받을 바에는 다른 회사 가는 게 낫지 않냐는 말, 그래도 회사에 있어줘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받는 인정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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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어졌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권고사직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유는 경영악화였다.


갑작스런 발표 후 퇴직 처리까지 이틀만에 이뤄졌다.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모두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그렇게 3년의 스타트업 생활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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