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회고] 이제 이 자리는 제 겁니다

퇴사 부검 일곱 번째 일기

by Stan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 수시 특채로 입사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은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효도 중 하나였기에, 그 맛에 잠시 취해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상사의 현재가 나의 미래'라는데, 닮고 싶은 상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체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분들의 최대 목표는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프로젝트에 몸빵으로 배정되더라도 피할 수 없었다. 최대한 싫은 티를 내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질책이었다. 이내 대부분 본인들이 '나이가 많아서'라며 체념했지만, 본질은 달랐다. 그들은 입사 당시의 기술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에는 쓰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그분들도 분명 젊은 시절엔 촉망받는 인재였을 텐데, 왜 이렇게 안타깝게 됐을까. 주변 동기들을 지켜보며 그 답을 찾았다. 회사 이름에 기대어 자기계발을 게을리한 결과였다.



그때부터 나는 회사 타이틀을 떼어놓고, 이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나를 검증받고 성장하고 싶었다.



내가 대기업을 떠난 결정적 이유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원래 낙후된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기존 주민들이 밀려나는 사회적, 경제적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도시나 지역뿐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앞서 대기업에서는 높은 고용 안정성 덕분에 역량이 부족한 인원이 퇴출되기 어렵다.



다만 스타트업에서는 성장 규모 변화가 큰 만큼 내부적인 문화나 분위기 측면에서도 격동이 있고,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권력 이동과 기존 멤버의 소외 현상이 발생한다.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조직 내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볼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의 특징과 문화


초기 스타트업은 대부분 자금력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환경에서의 팀 구성원들은 기술적 숙련도가 부족할 수 있지만, 강한 주인의식과 열정을 무기로 삼는다.



구성원들은 특정 전문성에 국한되지 않고 '무엇이든 한다'는 태도로 다양한 업무를 겸임한다. 그리고 제한된 자원과 낮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비전과 가능성을 믿으며 시장성을 증명하려는 의지로 뭉친다.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한 공백을 그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대신하며, 조직의 초기 비전을 공유한다. 강한 동료애는 '우리'라는 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은 조직의 뼈대를 세우고 초기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며, 스타트업의 가장 위험한 단계를 넘어서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조직의 변화


초기 멤버들의 노력으로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하게 되면, 회사는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먼저, 확보된 자금으로 대기업이나 유수 기업 출신의 검증된 인재들을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한다. 동시에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도입되면서, 체계적이고 성과 중심적인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 멤버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새로 들어온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초기 멤버들이 가진 기술적 한계나 경험 부족이 도드라지고, 체계 없이 일하던 과거의 업무 방식은 점차 조직의 걸림돌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조직 내 젠트리피케이션: 기존 멤버들의 소외


기존 멤버들이 겪는 소외감과 박탈감은 조직이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이다. 새로 영입된 인재들이 핵심 의사결정권을 가져가면서 초기 멤버들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회사의 성공을 일군 초기 멤버들은 자신들의 공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이는 깊은 배신감으로 이어진다.



경력과 연봉의 격차는 보이지 않는 계층을 만들어내고, 이는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 사이의 갈등을 키운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신규 멤버는 체계와 성과를, 기존 멤버는 초기의 열정과 끈끈함을 강조한다. 이런 가치관의 충돌은 조직 문화의 균열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 조직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결국 생산성과 협력의 저하라는 실질적인 위험으로 이어진다.




성장, 회사에 맡겨놨니?


이런 안타까운 일은 사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기존 구성원의 입장에서도 기본적으로 성장을 회사에 맡겨놓은 듯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평상시에 회사와 제품의 로드맵에 맞춰 미리 필요한 기술 스택을 리서치하며 겸비하여야 한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개인의 성장을 위해 업무 외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업무시간에는 늘 퍼포먼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의 성장통: 조직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서


회사 차원에서도 내부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개인의 성장을 중요시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조직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문화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구성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로 인정 차원의 배려를 고민해볼 수 있다.



우선 초기 멤버들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성장할 수 있도록 명확한 경력 경로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공정한 보상 체계를 확립하여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멤버들이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는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규 멤버와 기존 멤버가 서로의 강점을 살려 협력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조직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 속에서 성장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다 보면, 초기 멤버들의 헌신과 팀의 유대감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잃을 위험이 있다.



조직 내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회사의 중요한 책임이다. 초기 멤버가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신규 멤버가 빠르게 조직에 융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스타트업은 더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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