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증권사와 미팅이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대표님, 사업전략부문대표님, 내가 참석하고 증권사에서는 이사급 2명, 부장 1명, 차장 1명이 참석했다.
미팅 목적은 우리 회사의 경영 상태에 대한 투자자로서 질의 응답이었다. 사실 겉보기에 질의 응답이지 공개적으로 잘 하고 있는지, 불안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확인하러 오는 자리였다.
시작과 동시에 전략부문대표님께서 과거 증권사 시절 압도적으로 실적을 냈던 얘기를 꺼내시는 것이 아닌가.
"저는 xx증권에 있었고, 저희 PI 실에서 xxx억을 xxx에 투자했는데 거의 500억을 벌었다."
그 종목은 증권사 짬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종목이었고, 모 증권사 측은 본인도 아는 그 종목으로 엄청난 실적을 메이킹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표님의 질의응답.
사전에 증권사 측으로부터 받은 사전 질문을 제끼고, 본인이 준비한 내용을 먼저 말씀드리겠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 발언에는 사전 질문 내용도 있었고, 투자자로서 적절한 시기에 출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지금까지 어떤 과정으로 경영을 해왔고, 어떤 이슈를 어떻게 핸들링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증권사 측은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어떤 대안이 있는가", "고객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어떻게 해소될 건지"
대표님은 방어 논리를 정치 / 산업 / 기업 / 경영 단위로 이미 세워놨었고, 그 안에서 증권사의 질문은 맴돌았다. 이윽고 질의 응답은 마무리가 됐고, 무사히 질의응답이라는 가면을 쓴 청문회는 마무리됐다.
사실 미팅에는 치밀한 전략 3가지가 숨어있었다.
첫 번째는 사업전략부문 대표님이 미팅 시작과 동시에 본인 출신과 압도적인 실적을 얘기한 건, 기를 죽이고 미팅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그 뒤로 증권사 이사에게 본인이 입장을 명확하게 하면 된다 라는 식의 뼈있는 말씀을 했을 때도, 상대방은 별 말을 못 했다. 결과로 증명하는 실력이 모든 걸 압도한다.
두 번째는 대표님이 사전 질문을 제끼고 본인이 준비한 논리 구조를 펼친 건, 이미 짜놓은 판에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내부 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허점이 보였지만, 외부에서 봤을 땐 전혀 알 수 없고 파고들 수 있는 논리적 허점이 없었다. 정치부터 산업, 경영 경험 등 증권사로서 사실에 근거하여 깊고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는 이상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깊이도 없는 질문을 하다가 끝난 것이었다.
세 번째는 참석한 증권사 인원 중 부장급이 증권사에서 끝발 날리는 실력자였고, 사업전략부문 대표님 인맥이었다는 사실이다. 미팅 도중 이사급 조차 부장에게 의견을 물어볼 정도였고, 그 부장님은 중립적이지만 묘하게 우리 회사에 도움되는 말들을 툭툭 던졌다. 이미 내부에 우리 편이 있는 셈이었다.
실무를 할 때나, 협상을 할 때나 주도권이 거의 모든 결과를 좌지우지한다.
끄느냐, 끌려가느냐 싸움이고 그 키를 쥔 사람이 권력을 쥔다.
이 감각을 아는 사람은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항상 승리하는 법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