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도 불안하답니다
인사이드아웃 2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보다 운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어릴 때 정윤희, 한진희, 김민희(홍상수 연인 말고) 주연의 '사랑하는 사람아'를 보고 펑펑 울었다. 천륜을 가져와 울라고 부추기는데 당해낼 수가 없다. 잘생김으로 요약되는 장동건, 원빈이 얼굴에 흙칠을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동생과 커온 세월이 왈칵 다카와서 왈칵 울어버렸다. 여기까지는 한국영화. 나머지는 픽사의 짓이다.
토이스토리 3에서 사람 주인공이 훌쩍 자라 더 이상 토이가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을 때 토이들이 알아서 떠난다. 이형기의 시구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대로를 연출하는데, 그만 질질 짜고 말았다. 인사이드아웃에서 핑크코끼리 빙봉이는 그냥 수도꼭지를 틀어버렸다. 빙봉이가 손을 놓고 멀리 희미하게 사라질 때 내가 두고 온, 흘리고 온, 모른 척한 그리움, 아쉬움, 미안함들이 빙봉이의 얼굴에 겹겹이 쓰여있었다.
9년 만에 인사이드아웃이 두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내와 듄 2 이후 영화관 나들이에 나섰다. 결과는, 코어부터 올라와 두 눈 옆으로 뭔가가 줄줄 흘렀다.
사춘기가 된 에일리가 겪는 불안감, 당황스러움, 부러움, 따분함이, 추가된 감정 주인공들이다. 따로 친구와 영화를 보고 온 방년 18살 내 딸은 에일리가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딸이 나보다 성숙하다. 난 아직도 에일리 같다. 당황, 부럽, 따분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된다. 웬만큼 겪어선지 별스럽게 당황할 일도 부러울 일도 따분할 일도 없지만 불안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름 많은 노력을 한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지니 먹는 거 신경 쓰고 조금 더 움직이려 하고 잠을 잘 자려한다. 생각의 40%는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22%는 사소한 일이고 4%는 바꿀 수 없는 일이라는 경구도 되뇐다. 뇌에서 수백억 뉴런들이 마구 엮여 머릿속에 떴다 사라졌다 하는 생각들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불안은, 잘 되라고 위험에 빠지지 말라고 나를 보호하는 소중한 감정이다. 하지만 깜빡 정신을 놓으면 질풍노도에 우리를 빠뜨린다. 에일리의 불안이가 자신도 어쩔 수 없어 눈물이 고일 때, 나의 불안이가 저렇게 고군분투하는구나 싶어서 안쓰러웠다. 극장의 어둠은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