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다 형식. 내가 탐내온 것, 내가 선망해온 것."
최근 아이는 부쩍 나를 따라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책상에 앉아 뭔가 보거나 쓰거나 하면, 아이도 옆에 앉아 거들고 싶어한다. 여러 시도 끝에 나는 내 옆에 아이 몫의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주고는 거기 앉아 아이더러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두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꾸 내 옆에 와서 앉으려는 아이에게, 우리 각시는 내친김에 때때로 유아용 학습지를 가져다 풀어보자고 권할 때도 있었다. 아이가 아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고 얼마 안 가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모습마저 내게는 참 좋게만 보인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옆에 앉아 소방차와 구급차를 손에 들고 “출동!”하고 외치며 놀더라. 자기 방에 가서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 옆이 아니라도 자리는 많을 텐데 굳이 내 옆에 와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그러고 논다. 하긴,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때가 있다.
내 유년기를 돌아보면 특히 그렇다. 내용은 잘 모를 때도 일단 형식이 중요했다. 왜 인사를 잘 하는 게 좋은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 어른을 만나면 일단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하고 배꼽인사를 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현관에 나가 “다녀오셨습니까” 그랬고, 밥상이 다 차려질 때쯤이면 큰방에 가서 아버지께 “진지 잡수세요” 했다.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고 컸다. 집안에서 교육받은 바도 있었지만, 교육받은 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실천하는가는 결국 자신 몫인데. 어린 나는 인사성 밝고 예의바르다는 평을 듣는 게 좋았거니와 스스로도 내심 자랑스럽게 여겼다. 물론 그런 가정교육이 끝내 내용이 빈약한 형식의 이식을 넘지 못했다는 점은, 이후 주변 ‘어른’들을 다채롭게 속썩여온 내 지난한 성장 과정이 방증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넥타이를 매고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날이 있다. 그때 내가 자주 보는 남자 어른들은 넥타이를 메고 다녔다.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그래서 나도 넥타이를 메는 편이 ‘남자 어른’에 가까워지는 길인 것인 양 여겼던 것 같다. 허나 그땐 넥타이를 멜 줄도 몰랐고 애초에 넥타이를 걸칠 만한 셔츠 한 벌 마땅치 않았다. 그날 끝내 넥타이를 메고 학교에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티셔츠에 어설프게 묶은 넥타이를 목에 스카프마냥 두른 체로 등교했거나, 그마저도 하지 못해 등교 시간만 늦어졌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그 일이 있은 후로 어머니는, 겸사겸사 주변 경조사 때에 입힐 요량으로 가짜 넥타이가 아예 달려서 나온 아동복 셔츠를 내 몫으로 사주셨다. 어머니 눈에는 그게 어른들 넥타이 차림이나 썩 다를 것 없어 보였을까 모르겠으나, 취향이 뚜렷하고 고집이 강한 어린 내게는 그조차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충족되지 못한 어릴 적의 추구미는 지금까지 내게 깊이 남아서, 얼마 전에도 주제에 맞지 않게 당근에서 중고로 넥타이를 샀다.
1만 원에 넥타이 4장인가 5장인가를 사온 날, 종이봉투에 뭔가 들고 온 내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기 주려는 것인가 싶은지 내 손에 들린 봉투 안을 살폈다. 이내 넥타이 하나를 꺼내 요리조리 살펴보더라. 목에 둘려보려고도, 쥐불놀이하듯 휘둘러보기도 했다. 관심이 있는 눈치였다. 내가 넥타이를 한 차림을 이따금 보여준 적은 있다. 넥타이를 한참 쥐고 노는 아이 모습을 보고, 넥타이를 메고 학교에 가고 싶던 초등학생 때의 나를 생각했다. 저게 뭐라고 그리도 둘러매고 싶던 걸까. 정작 요새 우리 아버지는 경조사 없는 날엔 넥타이 매시는 일이 드물더라. 따져보면 내가 당신께서 넥타이 맨 차림 봤을 무렵의 할아버지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내용보다 형식. 내가 탐내온 것, 내가 선망해온 것.
넥타이는 과거 동유럽 군인들이 두르던 목수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들 목수건에서 프랑스 귀족들이 장식스런 요소만 차용해 매던 것이, 근대 이후에는 신사 계층과 화이트칼라의 상징이 됐다. 기원에서 지금의 용도에 이르기까지, 넥타이는 갈수록 형식의 역할로 굳어진 셈이다. 애초에 그건 형식뿐이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형식은, 그 자체로 내용일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