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을 향유하는 순간 추억거리가 생긴다
티핑포인트: 신기술을향유하는 순간 추억거리가 생긴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변화를 이루기 전의 균형을 깨뜨리는 변화의 시점
4차 산업혁명의 메가 트렌드라 불리는 신기술들은 모두 최첨단의 디지털, 물리학, 생물학 기술들의 융합이다.우리는 이러한 기술들을 이해하고 배우고 활용하기 위해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 어려운 기술들을 어떻게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꾸어 보면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기술들 역시 과거에는 감히 받아들이기 어렵게 느껴졌었던 최첨단 기술 중의 하나였다. 즉 우리가 지금 신기술이라 부르는 것들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과거의 기술이자 아날로그(Analog)라 불리게 될 것이다.
데이비스 색스(DavidSax)라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TheRevenge of Analog)”은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에 꼽혔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초고도화된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코 앞에 두고 오히려 아날로그의 시대를 포스트 디지털시대로 주창하고 있다.(1) 결국은 플랫폼이나 채널을 통화 효율화가 아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색스는 책의 서문을 열면서 대표적인 아날로그 사물로 레코드판을 꺼내 들었다. 우리가 가장 감성적인 것 중 하나라 부르는 이 레코드판도 축음기의 시대에는 최첨단의 레코딩 기술 중 하나였다. 1932년 RCA 빅터사(社)는 새로운 원료인 비닐을 사용한 최초의 상용화 LP(long-playing) 음반을 출시했으나, 이 새로운 시스템은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소비자의 외면을 받다가 1950년경에서야 소비자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2) 우리가 생각하는 오래되고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하다고 느끼는 레코드판인 LP 판이 처음 나오고 대중으로부터 수용될 때까지 약 20년의 시간이걸렸다.
20년 이라는 시간은 놀랍게도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컴퓨터가 발명된 이후 데이터 저장장치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해 왔다. 실제 오래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자기테이프를 데이터 저장장치로 사용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약 30여년 전만 해도 컴퓨터 자체의 보급률이 매우 저조했고, 학교마다 몇 대 없는 컴퓨터에 달려 있는 저장장치는 자기테이프뿐이었다. 하지만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테이프는 플로피 디스크로 바뀌었다. 40대에 접어든 사람들 중 일부는 플로피 디스크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5.25 인치의 플로피 디스크는 얇아서 책 속에 넣어 놓기도 했고, 당시에는 컴퓨터 옆에 플로피 디스크 전용 보관함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일반적인 가정용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 용량은 40 MB 정도였고, 플로피 디스크의 용량은 1.2MB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3.25 인치의 튼튼한 플라스틱으로 보호되어 있는 보다 작으면서 용량은 커진 새로운 저장장치가 나왔다. 당시에 3.5 인치 디스크는 놀라운 신기술과도 같았다.
그 이후 CD를 거쳐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지 약 30여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테라바이트 용량의 외장하드와 수백 기가 바이트를 저장할 수 있는 USB를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클라우드(Cloud)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USB와 외장하드의 영역마저 대체되어 가고 있다. 한동안 대용량의 자료를 메일로 보내는 새로운 클라우드 저장 방식을 개발했던 드롭박스(Dropbox)는 구글과 같은 보다 편리한 클라우드 저장방식이 개발되면서 사라질 위기라는 말도 많았다. 이미 메일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부분의 포탈서비스에서 대용량 메일 서비스와 클라우드 저장은 더 이상 어렵거나 낯선 서비스가 아니다.
이처럼 혁신적이라 생각되었던 기술이 과거의 기술로 인식되고 분류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 속도는 기존의 기술들을 아날로그화 하는 시간을 더욱 단축시키고 있다. 우리가 현재 아날로그라 부르는 그 당시의 신기술들은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들이 기존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면 기술의 한계가 극복되면서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가치가 추가되었고, 음악을 듣는다던가, 데이터를 저장한다던가 하는 원래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래의 가치에 새로운 기술들조차 확보하지 못한 기존의 차별화된 가치는 고유하게 남아있다. 아날로그를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LP 판이 튀었을 때의 불규칙함을 별거 아닌 듯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아닐까도 싶다. 기술의 실수에조차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아날로그라 부르는 것들은 당시에 최첨단의 기술들을 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 볼 때에는상당히 높은 불량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불량품에 조차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불량품은 시장에서 정상적인 제품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소리는 진동이고 LP판은 그 진동을 기계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음악을 듣는다는 행동은 기계적으로 각인된 진동을 기계를 통해 재생하는 다분히 기계적인 행동이다. 아날로그와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듯한 지극히 기계적인 행동을 현재에 아날로그라 부르는 이유는 단지 상대적으로과거에 있었기 때문이지, 전달하는 가치의 질과 양에 있어 차이가 난다고 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기존의 가치를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신기술 역시 그 당시에 혁신이라 불리던 기술들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의 창출과 효율적 가치 생산해 이바지 해왔다. 지금의 신기술이 과거의 아날로그가 되기까지는 불과 10년이 채 안 걸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 나오는 신기술들을 향유하지 않으면, 과거의 추억거리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날로그와 4차 산업혁명의 메가트렌드의 공통점은 각각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미래지향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추억이 되기도 한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 보면 배철수 아저씨는 아직도 직접 음악을 틀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곡 소개 이후 음악이 나올 때까지의 잠시간의 여유가 있다. 1,2 초간의 공백이 주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잠시간의 설레임과 기대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중의 하나이다.
때로는 배철수 아저씨의 휴가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배철수 아저씨를 대신하여 일주일 동안 마이크를 잡으시는 분들의 이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소회를 들을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직접 음악을 틀어야 하는 시도에 대한 실수와 어색함 역시 긴장감을 동반한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1. 아날로그의 반격(The Revenge of Analog),데이비드 색스(David Sax), 2017
2.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1001 INVENTIONS: THAT CHANGED THEWAY WE LIVE),잭 챌리너 (Jack Challoner)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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