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볼 때
사람 얼굴만 다르지 모든 게 판박이라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보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비치고 싶을까 궁금증이 인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행복감을 만끽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미소 짓는 사람들, 근사한 애인과 찍은 사진, 결혼식 사진, 인생네컷, 바디프로필 등.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일은 고된 일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은 곳일 텐데 인스타에는 오직 행복한 이들만 살아남는다. 행복 외의 감정은 게시물로서 허락되지 않는다. 우울과 분노가 용인되는 곳은 대개 스토리이다. 24시간이 지나면 휘발되는 짧은 감정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나는 인스타에 그럼 무엇을 올리는가. 감정에 관해서는 잘 올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웃거나 행복에 겨워하는 사진은 보통 친구들이 태그해주는 것뿐이다. 감정이 드러나는 사진 대신 나는 자주 음악에 관한 스토리와 게시물을 업로드한다. 좋은 노래를 공유하고 싶어서 스토리를 올리고, 내가 부른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게시물을 올린다. 가끔 글도 쓰는데,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날에, 아니면 왠지 기록을 남기고 싶은 날에 최대한 격한 감정을 배제한 채로 글을 쓴다. 인스타에는 특히 감성적인 글이 넘치는데,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요즘 시대는 뭐든지 과잉이다. 자아가 비대해져 타인을 침범한다. 타인의 영역을 해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잠식된다. 어떤 시선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희미해진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없는 게 아닐까. 댓글에 의존하고, 유튜버의 의견에 동조하는 게 의식 활동의 전부이고, 시간을 사용하기보다 죽이는 데 치중하는 우리들. 웬만한 죽음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언론과 시민. 처참할수록 주목받기 때문에 갈수록 언론은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전해지는 끔찍한 뉴스에 시민은 시나브로 둔감해진다.
모든 시대가 제각기 치명적인 흠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엇에 가장 취약할까. 이 시대는 어떤 시대로 불릴까. 멀리 뒤따르는 세대는 우리 시대를 암흑의 시대로 기억할 것인가, 혹은 찬란한 번영의 시대로 송찬할 것인가. 설마 인류의 마지막 장을 우리가 마무리하고 있는 것인가. 과학자가 인류의 멸망을 막을 기술을 선사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인가.
미래를 생각하면 아득하게 갑갑하다. 도저히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나야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세계의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태어날 아이들은? 이런 건 아무 영향력 없는 내가 고민해서 풀릴 문제도 아니다. 정치를 담당하는 높으신 분들의 역할인데, 이쪽도 자기들이 늙어서 은퇴한 이후를 그다지 숙고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린 사람들이니, 성밖에 있는 무지렁이들한테는 눈길이 가지 않으리라.
우물쭈물하다가는 시기를 놓친다지만, 그 시기를 아는 사람도 없다. 정해진 것이 없어 우리는 마지못해 선택하고, 혼란스러운 길을 걷는다. 혼자 생각하고, 사람의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인간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