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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담과 고요 Feb 18. 2024

첫 문장을 써야 하는 두려움.

무엇에 비유할까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책 <작가의 시작>에는 글감으로 삼을 만한 52가지 주제가 제시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첫 문장을 써야 하는 두려움을 무엇에 비유하겠는가?'이다. 누구나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을 써야 할 때 그 압박감은 극심해진다. 첫 문장의 중요성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김훈이 <칼의 노래>를 집필할 때, 첫 문장의 조사를 두고 몇날며칠을 씨름했다는 것을 안다. 그만큼 정확해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시의 경우, 첫 행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끝 행이 시를 매듭 짓는 순간만큼 중요할 것이다.


하여간 첫 문장은 글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상대의 눈빛을 탐색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주제로 돌아가, 첫 문장을 써야 하는 두려움은 무엇에 비유해야 적절할까? 뻔한 비유가 생각난다.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탈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발을 지면에서 떼어야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글 또한 첫 문장을 담대하게 시작할 때 비로소 글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첫 문장만 쓰면, 그 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신기한 일이다. 생각만 했을 때는 무엇을 써내려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데, 두려움을 감수하고 첫 문장을 쓰면, 타자를 치는 내 손이 내 머리를 대신해 글을 지어내는 것 같다. 


자유자재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첫 문장을 쓰는 방법뿐 아니라, 문단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법, 글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짓는 법 등이 필요하다. 여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시도하고 연습해야 숙련될 것이다. 나에게 이 '브런치'라는 공간은 일종의 작문 체육관이다. 땀방울을 떨어뜨리면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처럼, 나는 이곳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떨어뜨리면서 기초 필력을 키운다. 만들어진 몸으로 어떤 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필력으로 어떤 글이든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지 다짐한다.


내가 무엇을 쓰면서 살든, 글을 쓰는 동안에는 온전히 작가의 마음이 되고 싶다. 긴 시간 동안 작가를 동경하면서 살았다. 그들도 첫 문장을 쓸 때, 하얀 바탕의 문서를 앞에 둘 때, 새로운 글을 구상해야 할 때, 불안할 것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이니 별안간 위안이 된다. 


또 어디에 비유할까. 캄캄한 골목 초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멀리 희미한 가로등 빛이 보이긴 하지만, 당장은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골목에서 작가는 첫 문장을 내딛는다. 그래야만 도달할 수 있다. 유일한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마주한 사람을 두렵게 만들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완성된 글이라는 목표에 도착할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앞으로 쓸 문장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내게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고, 내가 쓴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자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체험하고 싶다. 글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 작가들의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다. 내 글이 여기저기에서 읽혀서 기분 좋은 부담감을 느끼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다. 


내가 여기서 처절하게 실패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작은 성공을 이루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에 내가 발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 한 번의 인생이고,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모르는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이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내가 어릴 때부터 일관성 있게 좋아한 것은, 글과 음악이다. 둘 모두 취미로 두기에는 아깝고, 둘 다 업으로 삼기에는 집중력이 분산된다. 그렇다면 음악을 취미로 두어야 맞다. 노래를 만들기 위해 기약 없이 노력하는 것, 발성 연습을 하고 종일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내게 힘든 일이다. 가끔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운이 닿는다면 무대에 서는 것 정도가 알맞다.


글은 하지만, 종일 파묻혀 있어도 좋은 그런 것이다. 좋은 책을 찾아 헤매고,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작가의 재능을 갈망하고, 글을 미친듯이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하고 질투한다. 이런 생각을 지니고, 끝까지 해보자. 죽기 전까지 이 마음을 놓지 말자. 글은 나를 괴롭게 하고 기쁘게 한다. 글이 평생 나를 괴롭힐 수 있도록 나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자. 글이 평생 나를 기쁘게 하도록 내 감각을 충분히 열어놓자. 더 이상 겁낼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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