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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07. 2021

탐욕의 출발

무혈입성의 판타지(2016. 6. 2)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언가 원하던 것을, 그것이 물건이건, 지위건, 관계건 혹은 능력이건 간에,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면 당신은 그만큼의 대가를 이미 치렀거나 앞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마음껏 누려도 관계없다. 문제는 아직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그저 요행히 운이 좋아 얻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다. 당신이 치르지 않은 대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


부모를 잘 만나 엄청난 유산, 혹은 탄탄한 가업을 물려받게 된 이들을 금수저라 부러워한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거나 거대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착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온 부와 명예가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진 그저 탄생의 축복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렇게 아무 수고로움도 없이 차지한 부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다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저 철딱서니 없이 까불다가 제발등을 찍는 소수의 사례일 뿐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수많은 금수저들이 겪는 삶의 이력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과 가까울 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은 까닭은 누구도 대가 없이 얻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굳게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풍요의 저주를 받았으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떤 부귀영화도 후불제라면 나는 사양할 것이다. 우리는 후불제 교통카드는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후불제 실패와 불행으로 맞바꾸고 싶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렇게 대가 없이 내게 다가오는 온갖 행운들은 잠시 흥분하면 그저 요행과 축복쯤으로 만끽하지만, 서서히 혹은 일순간에 그 대가를 요구하며 철저하게 받아간다. 인생의 굴레에서 공짜는 없다. 세상은 44%의 고이율로 서민의 고혈을 쥐어짜는 사채업자와 다를 바 없다. 피도 눈물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찾아오는 반가운 일들은 항상 삼가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감사해야 하며 조금이나마 나누어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 삼가는 마음이 대가를 조금 천천히 치르게 하거나 혹은 준비된 불행을 맞게 되어 그 충격이 덜할 테니 말이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성취들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 주어진 악조건과 싸우며 온갖 불행과 고뇌를 감수하며 뜻한 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의 남은 삶은 이전보다 한결 또는 현격하게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정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것이고 많은 이들의 존경 혹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 세상의 냉혹함을, 눈물 젖은 빵을, 배고픔을, 외로움을, 서글픔을, 서러움을 충분히 맛보았다. 제아무리 부귀영화가 눈앞에 있다고 하여도 당장의 고통을 선뜻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그들도 원해서 그 삶을 감수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텨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인간으로 태어나 겪을 수 있는 온갖 풍파를 전제로 한다면 그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치른 대가는 그들의 영화로움보다 훨씬 값비싸다. 그 값비싼 고생을 하였기에 그들의 영화는 지속될 수 있다. 그들은 나대지 않으며 겸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겸손함은 쓰디쓴 경험의 산물이다.

가끔은 내가 호강에 빠졌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의 호강이 과거의 괴로움보다 못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밀린 이자가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현실을 산다. 그 불안이 내 호강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러하다면 참 다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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