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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02. 2021

남기고 싶은 말

삶을 마감할 때의 바람직한 자세란(2018. 5.31)

중년에 접어들면서 지천명이라는 쉰을 앞두고 가끔은 나의 명이 다하는 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상상하는 것으로도 가슴이 찢겨나가는 아픔을 느끼게 되는 건 내가 아직은 살 날이 많기도 하려니와 이생에 미련이 많이 남아서 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면 이런 경망스러운 걱정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하지만, 내 안에 남은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돌연사에 갑작스러운 난치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이들이 주변에 늘어가면서 내게도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럴 때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것이 구구절절한 편지든, 담담한 당부이든 남은 이들이 남은 삶을 슬기롭게 살아내도록 내 빈자리를 채워줄 무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조급증이 나곤 했다.


평일 점심 일찍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잠시나마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듯 눈을 감고 지내는 일이 잦아진 요즈음, 우연히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곡을 듣다가 마음에 들어 여러 번 다시 감상했던 곡 하나에 마음이 꽂혀 버렸다. 이 노래는 남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것이 꼭 남녀 간 이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혹은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죽고 못 살던 사이도 유효기간이 지난 것처럼 남남이 되는 남녀 간 연애에 이토록 아련하면서도 서늘한 이별의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답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절절한 연애는 꼭 남녀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는 각성이 왔다. 살면서 깊은 인연을 맺어온 모든 이들, 특히 피붙이 가족들과의 이별은 여느 연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 내게 닥쳤을 때, 이 곡의 가사보다 훌륭한 말을 남길 자신이 없다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이 곡은 노래를 부른 김광진의 곡에 그의 아내가 가사를 붙인 것인데, 아내가 헤어진 남자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자의 언어다. 간결하지만 절절하고 슬프지만 절제되어 있는 이 가사를 들으며, 기각 막히게 훌륭한 곡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혹여 세상을 떠났을 때 혹시 나를 그리워할지 모르는 남은 이들에게 이 곡을 남기고 싶다. 이 가사는 꼭 원곡과 함께 들어야 한다.



편지 - 김광진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 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맘만 가져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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