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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30. 2021

가다마이

권위주의 사회(2013. 6. 7)

싱글 정장을 뜻하는 일본말 '가타마에'가 변형되어 등장한 국적불명의 단어, '가다마이'는 대한민국에서는 빈대떡(?) 신사의 상징 혹은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단골 복장으로 유명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잘 나가는 사업가는 늘 근사하다 못해 예능인으로 오해할 만큼 과도하게 유행을 타는 양복을 걸치고 다닌다. 재킷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 콧물 닦으라고 달아주던 가제(거즈) 수건을 연상시키는 행커치프가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다. 직장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복장을 일컬어 '가다마이'라 불러봄직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다마이'는 '쓰메기리' '와루바시' '벤또'와 같이 대표적인 일제 식민잔재라고 할 수 있는 단어 중에 가장 먼저 사라져 버린 듯한데, 아직도 교복이나 정장 재킷을 '마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남아 있어 질긴 생명력을 확인하곤 한다. 아무튼 가다마이, 블랙 슈트는 사회적 성공을 대체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징병제인 대한민국에서 의무복무를 위해 사병으로 입대하면 이등병에서 병장까지 세 차례 진급을 하게 된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진급 호봉이 줄어들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나의 복무 시절에는 5개월, 7개월, 8개월로 입대한 지 만 1년이 되면 상병을 달고 20개월이 되면 병장이 되었다. 이등병 생활은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채 허둥대다가 지나가고(그나마 기술병으로 입대한 나는 훈련소를 마치고 후반기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3개월 가까이 교육병 생활을 한 탓에 변변한 경험조차 없지만), 제법 감을 잡고 제 몫을 하게 되는 건 일등병 시절이다. 그렇게 한 해가 후딱 지나가버리면 이름도 화려한 '상병'이 되고, 이때부터 소위 '짬밥'의 티를 내기 시작한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는 것은 기본이고, 주로 짝다리를 짚으며, 거수경례 시에도 손을 올리는가 싶으면 이내 내려가 있기 일쑤다. 경례구호는 분명 외치는 듯 하지만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필승'이라는 구호는 이등병 시절엔 하도 빠르고 강하게 외치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는 '피숑'으로 들리고, 일등병쯤 되면 절도 있되 여유 있게 '필~승'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한다. 상병은 보통 힘없이 받침을 빼고 '피스' 쯤 부르며 병장들은 대개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으로 구호를 외쳤으려니 짐작할 따름이다.


이렇게 짬밥에 따라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는 군대사회, 특히 사병조직은 서슬 퍼런 '군기'가 살아있는 듯하면서도 각자의 호봉과 계급에 따라 적당히 '(군기) 빠진' 행동을 용인한다. 군 복무 시절에는 이것이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의무복무라는 고유한 제도가 만들어 낸 독특한 문화이려니 생각했다.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코너였던 '동작 그만'을 기억하는 이라면 병종과 지역, 주특기를 불문하고 군대 전역에 퍼진 동질의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놀라운 것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한민국 직장에 만연한 군대문화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군대문화의 확산이라고 하면 대학에서의 신입생 신고식이나 중고등학교의 과격한 체벌, 엄격한 선후배 관계와 같은 폭력문화를 연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뿌리 깊고 고질적인 부작용이 '짬밥'문화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호봉제도 사라지고 경쟁과 탈락이 일상화된 21세기에서도 여전히 경력자는 보직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은근한 대접을 요구 내지는 강요한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는 '동작 그만'과 함께 인기 절정을 다투던 개그 코너, 임하룡의 '도시의 천사들'(밥풀떼기, 불광동 휘발유 같은 별명의 조폭들이 양 어깨에 있는 대로 뽕을 넣은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엔 대유행이었던 옷을 입고 나란히 서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무더기 스탠딩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던 말이다. 조폭문화와 군대문화가 닮아 있는 것은 '조직'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내세우는 대부분의 '경력'은 이처럼 '짬밥'에 대한 대우를 주장하는 것이고 군대와 조직폭력배의 문화에서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했다. '경력'은 '연륜'을 쌓게 하고 그 '연륜'은 노련하고 세련된 일처리로 나타나며 그 연륜의 결과물은 '경력자'에게 '권위'를 부여해 준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와 같은 투로 연공과 서열을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권위'를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그곳에는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적인' 거만함만 남는다.


뜬금없이 가다마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위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검정색 정장이고  정장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가다마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태하고 고루한 단어 따위가 어울리는 주장이 '짬밥 대접'이며 '짬밥 행세'. 나이를 먹으면 체력이 달린다. 차라리 모자란 체력을 호소한다면 '측은지심'이라도 들겠으나 어쭙잖은 '짬밥' 들먹이며 온갖 노인 흉내를 내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짬밥'만큼 그들의 권위도 지위도 어설픈 '연륜' 사그라진다는 생각을 지울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2008년부터라고 생각한다. 내 출근복장에 남아있던 마지막 권위의 상징, 정장 바지를 거부하고 면바지를 입기 시작한 때가... 아직도 편치 않은 시선이 남아있긴 하지만 내 끊임없는 이직만큼이나 기득권과 권위를 부정하겠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전에는 당신의 '짬밥'을 떠들지 말자.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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