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Aug 04. 2021

스끼다시 Vs. 독고다이

조직을 견디는 자세(2017. 1. 5)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본말은 대표적인 일본 제국주의 식민잔재라고   있다. 그렇게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며 뿌리째   대상으로 여겨졌던 일본말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여전히 우리  깊숙이 침투해 있다. 최근 드라마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회자되는 '츤데레' 일본말이라고 하니  유래가 35년의 암흑기에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서글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말들이 분명 어디선가 유래되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원이 어디이건 그저 우리말이 되었을 뿐이다. 그게 언어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말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해방의 역사가 아직 짧은 탓이리라. 굴종의 35년을 경험하신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 기억에서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 세대 역시 일본말에 대한 알레르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본말에서 느끼는 쾌감도 있다. 사실 좋은 표현에는 일본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찮거나 몹쓸 것들을 표현할 때 주로 인용되는 것이 일본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말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제목과 같이 나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말 중에 '스끼다시'와 '독고다이'라는 표현의 용례와 어감을 인용하고 싶을 뿐이다.


* 스끼다시

: 일본요리에서 처음 내놓는 가벼운 안주, 전채


* 독고다이

: '특공대'를 뜻 하는 말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조직과 상관없이 별도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일컬음


요즘은 일식집에서 스끼다시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물론 내 동년배 이상의 분들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내게 스끼다시는 노래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상에 가깝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기이한 예명으로 활동한 고 이진원의 "스끼다시 내 인생"이란 곡은 한동안 좌절한 30대들의 18번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18번이라는 표현도 일본식이다. -.-;;;


이 노래에서 스끼다시란 결국 메인 요리인 횟감이 되지 못하는 들러리, 잉여인간의 다른 표현이다. 그저 가볍게 깔짝거리는 안주거리라는 거다. 세상의 주역이 되지 못하는,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삶이 이렇다는 것이다. 매우 자조적이고 음울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나의 30대 역시 이러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비관주의자인 나는 스끼다시의 효용성을 인정하지만 이 노래에서의 스끼다시는 지질하기 그지없는 루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존심을 상실한 인간은 살아갈 수 있지만 자존감을 잃어버리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우리의 자존은 대개 사회적 지위, 주변의 인식과 같은 상대적 위치에 좌우되기 쉬우며, 우리는 자존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우월감에 집착하는 사회에 살아왔다. 즉, 타인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만족감이 자존감을 대체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과 탈락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월감과 자존감을 동일시해 왔다. 그 결과 우월감에서 소외된 90%는 모두 스끼다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저급한 사회라 아니 말할 수 없다. 그 수준과 품격이 최근 3개월 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와 맞물려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10여 년 전 스스로를 스끼다시라 비하했던 30대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현실인식이다. 그들은 세상을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구도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결과인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천편일률적 사고는 가히 기네스북 공인 수준에 이르렀다.


'독고다이'는 조직과 화합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을 일컫는 나쁜 표현이다. 그러나 독고다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의미는 바로 독립적 자아라는 정체성을 내재한다는 것이다. 독고다이는 조직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는 조직의 결정을 존중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고다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면 그는 확고부동한 자아정체성과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독고다이가 아니라 추방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떠한 조직에서도 제 몫을 하지 못하면서 조직에 충성하지 않는 자를 용인하지는 않는다. 무능한 조직원은 있어도 무능하고 독단적인 조직원은 없다는 것이다.


고로 독고다이는 독립적 주체로서 조직에 용해되지 않은 희귀한 존재다. 우리는 횟감이 되려고 주인공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어떤 장애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자아 독립성과 생존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그 자체로서 주인공인 독고다이....세상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 독고다이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당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주인공을 꿈꾸기 전에, 그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독고다이를 꿈꾸자. 누구의 평가도 추천도 인맥도 필요하지 않은 유아독존의 세상, 나는 독고다이를 꿈꾸며 40대를 견디고 있다.




온 나라가 촛불로 뒤덮였던 시기였다. 그렇게 나라에게도 나에게도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내 독고다이 생활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이제 휴직이라는 고비를 맡고 있다. 이것이 위기인지 기회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가다마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