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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13. 2021

All Elements Rule

슬기로운 가정생활(2014. 2. 21)

우리 집을 구성하는 가족은 아내와 나 그리고 세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이 있다. 식구의 확장 개념인 '생구'를 기준으로 하면 정글리안 햄스터 숫놈 하나, 푸딩 햄스터 암컷 하나, 그리고 구피 13마리까지 포함할 수도 있겠다. 입이 봉인되어 있고 항문이 없으니 먹지도 싸지도 못하는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집사람과 아이들이 생명체라고 박박 우기는 토끼인형 3인방까지 합치면 그 수가 늘어나겠지만 내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제외한다.

 

난 가족의 범위를 적어도 식별과 교감이 가능한 대상까지로 한정하고 싶다. 그것이 반려견이든지 거북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밥만 주면 따라 다니는 구피는 가족에서 제외될 것이고, 햄스터 두마리는 원초적 본능에 따른 반사작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적어도 우리를 식별은 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한번 쯤 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가족은 아닌 것 같다. 반려견이라면 몰라도...


특허제도에 있어서, 하나의 발명을 특허로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All Elements Rule(구성요소일체의 원칙)'이 있다. 하나의 발명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구성요소들이 완비되어 있어야만 독립적인 발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특허받을 만한 발명인지 여부를 떠나 최우선적인 선결조건이 바로 'All Elements Rule'이다. 특허받고자 하는 발명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라도 비어 있으면 발명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통상 구성요소가 많아질수록 권리범위가 좁아지기 때문에 해당 발명의 구현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성요소로만 특허를 청구하게 된다. 그러나 특허의 권리범위를 넓힐 생각만으로 구성요소를 줄이다 보면 발명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특허심사에서 거절결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특허출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해당 발명을 구현하는 필수 구성요소를 한정하는 것이다. 되도록 권리범위를 넓히되 미완성 발명으로 거절받지 않을 만큼 핵심 구성요소는 모두 나열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핵심 구성요소의 수를 줄이는 것이고 또 하나가 핵심 구성요소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유선 전화기'라는 발명을 특허로 받고 싶다면 최소한의 구성요소는 본체, 송수화기, 본체와 송수화기를 연결하는 라인이다. 이때 전화기 본체를 '다이얼로 구성된 본체'라고 한정해 버리면 '버튼 방식으로 구성된 본체'는 해당 발명이 특허를 받더라도 권리범위를 벗어나 특허침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각 구성요소를 지나치게 한정하지 않고 해당 구성요소의 기능은 구현하면서 최대한 범용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특허청구범위를 작성하는 중요한 기술이 된다. 예컨대, 전화기 본체를 특허청구항에서는 '수신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입력 수단이 부착된 본체'라고 해 버리면, 다이얼, 버튼, 터치스크린 등 다양한 입력방식을 채택한 모든 전화기 본체는 이 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하게 되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는 실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All Elemets Rule'에 따라 특허출원의 독립 청구항을 작성할 때는 해당 발명을 구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구성요소로 제한하고, 그 구성요소의 기능을 구현하는 대체 가능한 수단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을 동원해야 한다. 


이런 'All Elements Rule'의 관점에서 우리 집의 구성요소(Elements)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았다. 먼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아파트, 주택, 방)이나 반려동물이나 인형, 장난감 따위는 필수적이지 않다. 홈리스 가정도 가정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구성요소는 일단 가족 구성원이 된다. 즉 아빠, 엄마, 딸, 아들... 이렇게 4명이 필수 구성요소다. 나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필수 구성요소란 해당 발명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즉, 빠지거나 대체될 수 없어야 한다. 


우리 가정이 온전하게 기능하기 위해, 즉 한 가정으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중에 필수 구성요소가 아닌 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엄격한 기준으로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들이 필수적이고 대체 불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구성원 1인의 관점이 아닌 모든 구성원의 공감대를 기준으로 해야 했다. 즉, 만장일치로 그 필수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막내인 아들. 그는 이미 8년 전에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그가 오기 전에 우리 가정은 부부와 네 살배기 딸아이로 구성된 단출한 가정이었지만 그 단출한 구성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그가 온 후로 아내와 나의 손길은 바빠졌고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는 우리가 온 신경을 집중하여 챙겨도 늘 우리의 시야를 혹은 예측을 벗어나 제멋대로 사고를 쳐 놓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우리의 몸이 말할 수 없이 고달파진 것을 모두가 인정하지만 그가 없었을 때와 비교해 엄청나게 웃음의 횟수와 강도가 높아졌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우리 가정의 구성에서 배제할 수 없고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그가 필수 구성요소라는데 동의할 수 있다. 


다음 큰애인 딸. 그녀는 11년 전에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그녀로 인해 단꿈 같다는 신혼기간은 단 몇 개월로 접어야 했고 한동안은 고약한 입덧으로 한동안은 묵직한 몸으로 아내를 괴롭혔으며, 태어나서는 유난스럽게 큰 목청과 잠투정으로 단 한두 시간 만에 젊은 부부의 체력을 고갈시키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그녀가 둘째로 혹은 쌍둥이로 오지 않으셨기에 그나마 우리는 번갈아가며 그녀를 감당할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1박 2일의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그녀를 떠맡으셨던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는 지금도 그날의 악몽 같은 밤을 기억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투자 대비 보상(Return on Investment)에 있어서는 글로벌 신흥공업국을 능가하는 고성장과 고효율의 아이콘으로 성장하였다. 먹을 것을 주면 키가 자랐고, 공부를 시키면 성적이 올랐으며, 발레를 보내면 환상적인 비율의 몸매가 되어 돌아왔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중 이 재미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녀 또한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우리 가정의 대체 불가능한 필수 구성요소다. 


다음은 아내, 그녀는 12년 전에 나와 결혼했다.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별과 관계없이(?) 아내는 필수 구성요소다. 중요한 것은 대체 가능성이다.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체 가능했거나 혹은 앞으로 대체 가능한가 이다. 먼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가 대체 가능했던가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나의 견해만이 필요하다. 내 아이들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에겐 발언권이 없다. 그런데 내가 12년 전 그녀의 대체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2년 전의 나의 결정이 달랐다면 전술한 2명의 필수 구성요소(아이)들은 더 이상 구성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12년 전의 결정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이것은 판단 권한이 없는 사안이다. 다음은 앞으로의 대체 가능 여부다. 이 문제는 나와 두 아이들의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아이들의 생각이다. 명명백백히 대체 불가능하다. 그들은 늘 아빠의 대체 가능성만을 떠든다. 따라서 이 문제 또한 나의 판단은 자연스럽게 거세되어 버린다. 아무런 판단 권한도 영향력도 없는 나의 의견을 굳이 덧붙이자면 그녀는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내가 그 결함들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어 놓는 순간 많은 이들의 저항과 비난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밝힌 것으로 소심하지만 나의 소신 표명에 갈음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문제적 인간인 나, 아빠의 필수성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긍정할 수 있다. 그러나 늘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대체 가능성이다. 가끔은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면 필수성마저 부정하려 드는 구성원들이 난무하지만 우리 가정의 경우 아빠가 그 정도로 미미한 존재는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가장 의구심을 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대체 가능성이다. 우리 아들은 늘 말한다.


 "아빠는 정말 필요해. 우리가 놀러 가려면 차가 있어야 되잖아. 운전도 해야 하고"


아들의 표현을 빌면 난 늘 대체 가능성에서 취약하다. 특허심사에서는 발명의 구성요소인 특허청구항(claim) 중 그 기능만을 서술하는 기능적 청구항을 부정한다. 아들은 그나마 그걸 위로라고 나에게 떠드는 것이다. 혹시 아빠가 맘이 상했을까 봐 말이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소외감이다. 그 소외감이란 대개 불필요하거나 대체 가능한 인간들이 느끼는 것이다. 내가 우리 가정의 "All Elements Rule'을 지키는 한축이 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구성요소들의 의견에 달려 있다.


그들은 종종 나의 불룩한 배를 놀리고 나의 작은 키를 못마땅해하며 나의 독단적인 전횡을 비난한다. 그들은 종종 온몸으로 나에게 과하게 엉기고 내 무릎을 소파 취급하며 내 어깨와 등짝을 물건 다루듯 한다. 그들에게 내가 대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아마 익숙한 것에 대한 애착 정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난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말의 이벤트를 선사하고 자주 가족여행을 감행하며 피로에 찌든 몸을 깨우며 평일 밤의 미니시리즈를 동반 시청해 준다.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늘 대체될 수 있는 구성요소라는 잠재된 불안감을 안고 가정에 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소심한 불안감마저도 사춘기 아이와 갱년기 엄마에게는 헌신짝 취급을 당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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