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ive with simplicity

휴직일기, -4일(2022. 2. 24)

by 낙산우공

흐르는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물리학의 이론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은 삶에서 시간의 상대성을 체감하곤 한다. 예전에 한 직장 상사가 이런 말을 했다.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킬로미터로 흐르고, 30대에는 시속 30킬로미터, 40대에는 시속 40킬로미터… 그렇게 실제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연배에 따라 점점 높아진다고 말이다.


모든 시내 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 미만이다. 더러는 30킬로미터 미만인 곳도 있다. 나는 이미 시내 도로의 제한속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속도감으로 하루를 사는 50대가 되었다. 그러니 나의 휴직기간 309일(휴가 포함)이 얼마나 금세 지나갔을지는 더 말하지 않겠다. 속도가 빨라지면 기억은 더 희미해진다. 무궁화호 열차를 탔을 때와 KTX를 탔을 때 바깥 풍경에 대한 감상이 다른 것은 속도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한가해진 최근의 두 달 사이에 나는 치열했던 초반 6개월의 기억을 잃었다. 그 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즐거운 합격소식에 흥분하다가 새해를 맞으며 차분해진 마음은 이내 수면 아래로 깊숙이 침잠하였고 어느새 복직이 소리 소문 없이 방문 앞에 당도하는 것을 잊은 채 무방비로 마주한 것 같다. 걱정이나 두려움이 앞서지는 않지만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끼며 모든 잘못을 나이에 뒤집어 씌운 채 부끄러운 남 탓을 지금 하고 있다.


309일 동안 나는 두 아이의 입시를 무사히 치렀고, 집안 곳곳의 거슬리던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이 집에 더 살 수 있겠다 싶을 만큼만 골칫거리들을 정리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아이들과 다섯 차례의 여행을 감행하였다. 휴직 초반에 세운 계획들을 꽤 많이 이행하였다. 그런데 나는 휴직의 마지막 4일을 남기고 혼란에 빠져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 전 복직 인사명령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접했을 때, 언제나 최악을 각오하고 살아야 한다는 평소의 다짐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사흘 전 다른 부서로 전보된다는 소식이 건너 건너 들려오더니 이틀 전엔 확정적이라는 소식으로 바뀌었는데 급기야 오늘 내가 전보를 희망했던 두 곳 중 하나를 직접 선택하라는 연락을 인사부서 국장으로부터 받았다.


공직사회에서의 인사라는 게 언제나 변화무쌍하기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하룻 사이에 계속 바뀌는 일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인사담당부서의 최고 수장이 내게 직접 의견을 물어 오다니…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도대체 왜 미관말직의 내 거취를 두고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일까? 걱정 반 기대 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


이 문장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읽으며 살아왔건만 나의 평정은 내 인사명령 하나에도 여지없이 깨어졌다. 나는 나의 인사배치가 한 주 사이에 널뛰듯 바뀌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분명 무언가 말썽이 생겼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는 있으나 나는 그 결과의 유불리를 판단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관심대상이 된다는 건 반드시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나의 순수한 의도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가는 조직생활을 해 본 이들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조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간에 나는 개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전보를 요구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나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이유로 나의 인사배치를 변경하려 하고 뜬금없이 나의 선택을 물어오더라도 나는 원칙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이미 평정을 잃었다. 수십 년을 수행한 수도승도 한순간에 파계승이 되곤 한다. 하물며 속세에서 생계를 위해 밥줄을 부여잡고 사는 내가 어찌 주변에서 일어나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매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잠시 당황했더라도 정신을 수습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만 해도 대견할 일이다. 그저 내 생업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노골적인 신호인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의 감상,

복직과 입학을 앞두고 아들과 이발을 하러 갔는데 하필이면 내 순서에 인사부서 국장의 전화가 울려댔다. 이발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했지만 자리를 피할 수 없어 통화내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무심코 흘려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화를 외면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영락없이 매여 사는 직장인이었다. 복직을 앞두고 이보다 더한 각성의 찬스가 또 있을까? 휴직을 마무리하며 차분하게 써 내려가던 이 글이 전화 한 통에 이렇게 정신없고 산만한 마지막 글이 될 줄이야... 아쉽지만 쉰 번째 이 글로 오십의 휴직일기를 마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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