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2일(2022. 3. 2)
열 달 전에 충동적이면서 계획적으로 감행했던 나의 휴직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복직 인사명령이 났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난 주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막연했던 그 시간은 결국 너무나도 당연하게 도래하였다. 혹시나 하는 요행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나는 다시는 안 돌아올 듯 총총히 떠났던 그곳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돌아왔다.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소해 버리고 싶어 휴직 마지막 날 오후, 딱 309일째 되는 날에 회사를 다시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재개된 탓에 그나마 직원들이 가장 많이 출근하는 월요일이었지만 자리에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사람들 중 절반 정도를 만나고 한 시간 남짓 지나 회사를 다시 나섰다. 낯설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그곳은 열 달 전과 다름이 없었다. 부서 위치가 조금씩 변경된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익숙하였다. 현관의 경위 직원 분들도 출입증을 챙기지 못한 나를 친절하게 통과시켜 주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휴직 전 몸담았던 부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전보되었다. 그래 봐야 상위 부서는 같기 때문에 새롭고 낯설 것은 없는 곳이었다. 과거에 한번쯤 함께 근무해 본 익숙한 인물들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8년이 넘는 시간을 한 조직에 근무해 본 경험이 없었던 나는 그 시간의 힘을 새삼 느꼈다. 윗사람들은 바뀌어도 나의 동료들은 늘 그곳에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뭐 대단히 끈끈할 것도 없었지만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그저 낯익은 이들과의 재회는 불편한 마음을 한결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몇몇 개인 짐들을 챙겨 이른 아침부터 정식으로 출근을 하였다.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도 조직의 시스템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열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사에는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와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익히는데 한동안을 소비해야 만 했다. 자리를 옮겼으니 책상도 PC도 모두 낯설다. 아니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고되다. 인사를 돌고 밥을 먹고 자리를 정리하다가 일찌감치 퇴근을 하였건만 난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아~ 되다~~"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연초의 정기인사로 새롭게 전보되어 온 간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건 귀찮은 일이다. 내가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인사를 돌 때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하면 끝났을 일인데, 도리어 내가 찾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 성가시지만 별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이곳에 와 있고 나는 그 뒤에 왔으니 말이다. 마스크를 쓴 채 코와 입을 가리고 사람을 식별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분명 돌아서는 순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유난스레 인사를 건네고 받는다.
마스크 탓에 잘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오전 내내 이 한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딱히 해야 할 말이 없으니 새로 온 사람이 기존에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란 이 것뿐이다. 잘 부탁한다는 것은 청원의 대상이 있을 때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이 말을 그저 막연하게 건넬 때는 그냥 무언가 말을 주고받아야겠기에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 뜻도 없다. 내가 잘 부탁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특별히 곱게 보아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나도 그들에게 무언가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밥 한번 먹자"와 같이 어색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공허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난 오늘 이 말을 수십 번 되뇌었다. 집에 오는 길에 곰곰 생각해 보니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이 말을 건넨 것 같다.
"넌 이제 꼼짝없이 여기서 10년은 굴러먹어야 한다. 그러니 제발 마음 단단히 먹고 잘 버티어 내자..."
이렇게 내 안에 옹골진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나의 "똘끼(?)"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잘 부탁한다고... 아무리 지랄 맞고 맘에 안 들어도 딱 10년만 버텨보자고... 제발 성질 좀 죽여 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열 달 만에 복직한 첫날의 나는 그렇게 빌고 있었다.
오늘의 감상,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빈 말로 주고받는 건 항상 위험하다. 휴직 전 부서에서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 한분이 얼마 전 승진을 해서 다른 부서로 옮겼는데 오후에 느닷없이 나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딱히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2년 남짓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그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색함을 참기 어려웠던 나는 "언제 밥 한번 해요"라는 말을 던지고야 말았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으로 일정을 확인했고 우린 다음 주에 점심을 한다. 다행히 옆자리 직원 한 분을 끼워 넣는 센스를 발휘한 덕분에 힘겨운 둘만의 만남은 피했지만... 항상 공백기를 갖다가 만나는 어정쩡한 사이엔 "밥"이 등장한다. 조심하려 해도 별 수 없다. 불편해도 한번 먹고 지나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