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7일(2022. 3. 7)
열 달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잊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309일 동안 단 한 번도 회사를 찾지 않았지만 복귀한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 입구, 복도, 사무실, 책상... 높은 파티션으로 둘러싼 나만의 공간은 휴직 전과 다른 곳이지만 익숙한 배치라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점심식사 시간, 식권, 구내식당... 식권 단가가 3백 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난 어제도 그제도 계속 이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이 편안함이라고 믿고 싶지만 익숙함은 그저 익숙함일 뿐 불편했던 것조차 예전과 다르지 않다. '아, 이런 곳이었지... 그래서 내가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지...'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회사가 재밌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 돈 받고 일하면서 재밌기까지 바란다면 넌 도둑놈이다.'라는 말에 수긍을 하지만 난 회사에서 재미를 찾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었을 뿐... 물론 이런 내 기대가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적인 삶을 기준으로 봤을 때 터무니없이 과하다는 사실을 안다.
아직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복도에서 식당에서 우연히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때서야 아, 이런 반가운 분들도 있었는데 나는 왜 기억해서 찾아가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물론 그렇게 오지랖을 떨 만큼 적극적이지 못한 내 성격 탓이고,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간혹 있음에도 내 직장을 좋아하지 않은 탓이다. 내게 얼마나 재력이 있어야 이 생활을 접을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해 보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장모님은 설날 새배를 받으시며 정년이 연장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 하신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저 같은 똥차는 빨리빨리 자리를 비켜줘야지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답변하는 내가 안쓰럽던지 장인어른께서 한 말씀을 보태주셨다. "우리 사위도 이제 쉰이 넘었어. 나이 먹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무슨 60 넘어서까지 일하란 소리를 하나" 나와 장인어른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장모님께서는 한마디를 더 거드셨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하나도 안 힘들어" 나는 새해 첫날에 장모님께 승진과 함께 정년까지 버티라는 특명을 받았다.
나의 장모님은 39년을 교직에 몸담으셨고 그중 마지막 세 해는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은퇴를 맞으셨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관리직에는 관심도 없으시다가 장인어른이 IMF 구제금융 사태 때 부도를 맞으시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되셨고, 그래서 뒤늦게 악착같이 교감, 교장을 찍고 퇴직을 하셨다. 퇴직 전에 처남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처남을 밀어붙여 마지막 해에 교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까지 치르셨다.
그런 장모님께서는 내가 지난해 열 달 동안 휴직한 사실을 모르신다. 그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 입시까지 챙긴 장한 사위로 믿고 계신다. 남의 눈치를 보며 그럴듯해 보이게 사는 삶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지만 이제 칠순을 갓 넘기시고 정정하신 장모님을 보면 무서울 때가 있다. 평생을 교직에 계셨기에 누군가를 혼내는 일에는 이골이 나신 분인 데다가 특히 인천의 험한(?) 남학교를 섭렵하셨기에 거친 남학생을 다루는 데는 선수시다. 신혼 초에 툭하면 나를 "야~, 너~"라고 부르시고는 습관이 되어 그렇다는 변명을 여러 번 들었다. 요즘도 가끔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정년을 채워야 할 만큼 딱히 믿는 구석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아내를 보면 50대 중반에 미친 척하고 퇴직 이야기를 꺼내 볼 의향이 있다. 그런데 장모님께서 아시는 날엔 난 초상을 치를 것이다. 나이 쉰이 넘어 장모님 눈치를 보는 나는 진정 50대라 말하기 부끄럽다. 벌어놓은 게 없으니 정년이라도 꿋꿋이 챙기라는 핀잔을 듣게 되면 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의 장모님은 10년 후에도 정정하실 것이고 아마도 나보다 더 건강하실 것이다.
내 아내가 나에게 관대한 것은 장모님 탓인지도 모른다. 난 가장 지능적인 아내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감상,
한주가 후딱 지나고 처음 맞는 월요일, 출근길에 아내를 지하철역에 내려주느라 함께 차를 타고 나가며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열 달이 지나도 월요일 기분은 똑같구나... 날씨도, 기분도..."
아내가 대답했다.
"넌 열 달 만에 느끼는 거잖아"
아이들이 가끔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듣다가 재밌어할 때가 있다.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엄마는 아빠한테 말을 너무 막 한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는 위계가 없다. 그러니 내가 존대하지 않는데 아내가 나를 존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가끔 아내의 말투가 거슬릴 때가 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유는 하나였다.
아내의 반말은 '하게체'가 아니라 '해라체'다. 아니 어떨 땐 고약한 안방마님과 어리바리한 마당쇠 간에 나누는 대화로 들릴 때도 있다. 부부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