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채용의 겉과 속
공공기관의 인사채용 방식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투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채용 공모는 늘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모 유력인사의 자녀, 친인척 또는 지인이 어떤 공공기관에 채용되었다는 사실 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인적인 청년 취업난을 생각하면 신의 직장이라는 공공기관 입사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만든다. 배밭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채용비리의 증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우린 정황만으로 인사 부정을 확신해 버리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공공기관에 입사했던 2003년에만 해도 공공기관 채용에는 기관의 재량권이 많았다. 심지어 나의 채용 면접에는 외부면접관 한 명 없이 기관장과 임원 단 두 명만이 단출하게 참석했다. 그들은 사기업의 오너 가문과 같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를 선택했다. 그야말로 간택했다는 말이 맞다. 당시에 나는 해당 기관에 관심이 많아 수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곤 했는데 마침 조건이 맞는 채용공고가 올라와서 들뜬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당시에 규모가 큰 공기업처럼 정기 공채를 실시하지 못하는 중소규모 공공기관들은 결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채용을 진행했고, 기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사추천을 받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이런 방식은 기관 입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한국전력공사의 연말 공채와 같이 매년 일정 규모의 신입 채용을 하는 기관의 경우에는 미리 공채 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상당수 있지만, 중소규모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수시 채용의 경우 원하는 인재를 적시에 수급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존 직원이나 기관의 자문기구에서 활동하는 외부 전문가(교수, 변호사...)를 통해 인사 후보자를 추천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이런 방식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아무튼 나의 첫 번째 공공기관 도전 역시 이미 내정까지는 아니어도 사전에 추천받은 인력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나는 들러리처럼 면접을 치르고 나왔다.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기관장을 보면서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기 좋게 채용면접에서 미끄러지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이는 당시 나의 면접에 들어왔던 임원 분이었는데 그날 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결과가 아쉬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마침 갑작스러운 결원이 발생해서 추가로 채용공고를 내지 않고 지난번 탈락자 중에 가장 면접 결과가 좋은 나를 채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직원수가 100명이 안 되는 작은 공공기관이었지만 기관의 2인자였던 임원이 직접 전화를 해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분의 말이 마치 꿈만 같았다.
나는 다음날 오후 반가를 내고 그 기관을 다시 찾았고, 면접도 아닌 티타임 같은 자리에서 입사가 결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공공부문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불안정한 사기업에서 일에 치여 살던 나에게 그때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내가 이곳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에 내가 입사한 공공기관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다양한 이력과 인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일단 기관장과 임원급 대부분은 소관 정부부처의 공무원이 퇴직 후에 부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기관장은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그 아래 임원은 과장급 이하 공무원이 주로 오곤 했다. 그 아래는 더욱 가관이었다. 한 부서의 나이 지긋한 직원은 친형이 소관 부처의 담당 과장(공무원)이었고, 나와 같은 부서의 젊은 연구원은 형이 모 검찰청의 검사였다. 이들이 어떤 계기로 이곳에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그들의 형제관계를 직원 모두가 알고 있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그런 인맥 없이 들어온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 친구들은 조직에서 별 힘이 없어 보였다. 계약직원으로 들어왔다가 잘 보여서 정규직이 된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기관의 유력한 외부인사와 관련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가족 중에 공무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나를 기관의 2인자가 직접 천거하여 별도의 채용절차도 없이 충원했으니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직원 회식 자리에서 나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던 팀장 한분이 이렇게 물어왔다.
"나는 낙하산 타고 내려왔는데, 당신은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혹시 잠수함 타고 온 건 아닌가요?"
난 이 말이 농담인지 진담 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낙하산 인사는 들어봤어도 잠수함 인사는 처음 들어봤다. 아마도 나에 대해 사돈에 팔촌까지 털어도 나오는 게 없으니 의아했던 것 같다. 나에게 그 질문을 했던 팀장이 어떤 낙하산으로 들어왔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10년 넘게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고 아무 경력 없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안다. 그는 경력이 없었지만 괜찮은 학벌과 뛰어난 언변이 있었다. 그래서 조직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나는 그가 누구의 낙하산인지 모르지만 왜 나도 낙하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경력 없이 들어온 그 팀장을 시기하던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런 뒷담화를 했다.
"아이들 똥 걸레 빨던 XX가..."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일찍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수험생활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걸 빗대어 조롱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런 험담을 하는 이들도 한심했지만 나를 잠수함 타고 온 사나이로 믿었던 그가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불쌍해 보이진 않았다.
그 기관에서 내가 본 가장 압권의 채용 인사는 총무팀장이었다. 규모가 작은 공공기관은 독립적인 청사를 보유하지 못해 민간건물을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공공기관도 초기에는 강남의 모 빌딩에 세를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건물의 소유주가 1997년 외환위기 때(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에) 떠들썩하게 부도가 난 모 대기업 오너였고 거기서 빌딩관리를 담당하던 직원을 세입자 신세였던 공공기관에서 받아준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마도 건물주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기관의 성격과 아무 관련 없는 이력의 그분은 내가 입사했을 때 기관의 총무팀장을 맡아 인사와 회계를 총괄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기관에서 만 3년을 꽉 채우고 다른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이직하고 몇 년 안되어 예전 공공기관의 동료가 사내연애를 통해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나는 신랑, 신부 모두와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식장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예전에 나를 채용해주었던 기관의 임원분을 만났다. 그분은 당시에 기관을 떠난 후였지만 옛 부하직원의 결혼식이라 참석을 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만난 기관의 전직 임원은 그날 혼주의 한 사람으로 조카와 조카사위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거였다.
요즘 공공기관의 채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되었다. 전문 관리업체에 위탁방식으로 운영을 하기도 하고,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 기반이니, 블라인드 채용이니, 지역인재 우대 선발이니 하면서 다양한 채용기법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직원을 채용한다고들 한다. 공무원 채용(5급, 7급, 9급 공채 등)과 달리 소규모로 알음알음 진행되었던 과거의 공공기관 채용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공공기관 채용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경우가 흔하다. 왜 이런 것일까? 채용 관련 부정은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절차와 시스템이 미비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 있는 자들에게 쉽게 휘둘리는 공공기관의 태생적인 한계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단언컨대 우리 사회에서 딱 두 가지만 해결되면 공공기관 채용비리 따위는 근절될 것이라 믿는다.
첫째는 공공기관 근무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월급쟁이의 천국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왜 모든 취준생들이 공공부문에 집착하여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공채에 목을 매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곳이 그렇게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라고 인식되는 순간 권력형 채용비리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둘째는 공공기관의 자율 경영이다. 공공기관이나 정부의 주인은 국민이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들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대기업의 10%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진 오너 가문이 경영권을 쥐고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 공공부문은 지분도 없는 권력자들에 의해 휘들리고 있다. 공공부문의 지분은 100퍼센트 국민의 것인데 말이다. 공공기관이 주주(국민)의 이익을 위해 자율적으로 운영된다면 누구도 함부로 숟가락을 얹을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터무니없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무엇이 더 정당한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명쾌하다.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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