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구닥다리 같은 말을 좋아한다.
'진흥'이나 '촉진'이란 단어는 공공부문 말고는 거의 쓰지 않는다. '진흥'의 사전적 의미는 '떨치어 일어남, 또는 떨치어 일으킴'이다. 정부가 쓰는 '진흥'은 떨치어 일으킴에 가깝다. '촉진'의 사전적 의미는 '다그쳐 빨리 나아가게 함'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정부조직법만 보더라도 경제, 산업, 사회, 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지만 그 기능은 크게 '규제'와 '조장'으로 나뉜다.
'규제'는 어떤 것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고 '조장'은 어떤 것을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때 '조장행정'의 수단이 바로 '진흥'과 '촉진'이다. 특정한 분야를 떨치어 일으켜 세우고 다그쳐 빨리 나아가게 하는 일(?), 그리하여 더 우수한 성과가 나오도록 돕는 것이 진흥과 촉진이요, 바로 조장행정이다. 정부의 중요한 임무다. '진흥'과 '촉진'의 연혁을 살펴보면 아마도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부가 했던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 진흥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행정부에서 규제행정의 대표주자는 기획재정부고, 조장행정의 대표주자는 산업통상자원부다.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들어가서 진흥과 촉진으로 법령 검색을 해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법령이 검색될 것이다. 이 모든 게 조장행정을 위한 진흥법과 촉진법들이다. 그리고 공공기관 리스트에서 기관명에 '진흥'이나 '개발'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관을 찾아보면 68개가 나온다. 이들 기관이 대부분 '특정한 분야를 떨치어 일으키고 다그쳐 빨리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한다.
'진흥'이니 '촉진'이니 '개발'이란 말은 오히려 민간에 필요할 것 같지만 민간부문에서는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촌스럽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 아직도 다소 구식인 표현이 존재하는 건 그만큼 보수적이라는 의미다. 공무원은 세련된 것보다는 촌스런 것을 선호한다. 공무원이 지나치게 민간의 세련된 스타일을 따라가면 윗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PPT자료를 작성할 때도 민간의 디자인업체에 위탁하면 현란한 색상과 화려한 디자인이 등장하지만 보고 과정에서 대부분 원색과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곤 한다. 공무원은 세련되면 안 된다.
아무튼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수가 유달리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특정분야를 진흥하고 촉진하기 위한 위탁기관(Agency) 때문이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별도의 특별법(~진흥법, ~촉진법, ~특별조치법 등)에 의해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설립되어 운영된다. 어떤 기관이건 법에 설치 근거가 한번 들어가면 쉽게 없애기 어렵다. 그리고 기관운영과 소정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일정 규모의 정부 재정(예산)이 투입된다. 그래서 많은 정부부처가 다양한 형태의 소관 특별법과 산하기관(공공기관)을 거느리게 된다. 경제산업분야 관계부처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래서 이들 법을 공무원들은 속칭 '나와바리'법이라 부른다. 이 법률의 조문에 따라 각 행정부처의 업무영역이 보다 명확해질뿐 아니라 타 부처가 쉽게 넘볼 수 없는 경계를 그어버리는 것이다. 넓게 보면 다 같은 행정부 내각의 일부분이지만 그들 간에도 경쟁과 탈락이 일상화되어 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정부조직개편이 시행된다. 정권의 기호에 따라 정부부처는 다양한 형태로 이합집산하게 되며 심한 경우 부처가 폐기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옷을 벗지는 않지만, 소속 부처가 타 부처에 통합되거나 없어지면 해당 공무원은 M&A를 당해 모기업을 잃은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통합부처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며 인사와 승진 등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소속된 부처를 '우리 회사'라고 부른다. 그만큼 소속감이 남다르다. 그 소속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부처 간에는 알력과 다툼의 빌미가 되곤 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에 통합시키고, 정보통신부를 둘로 쪼개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고 나머지 산업 진흥 부문을 모두 산업자원부에 넘겨준 적이 있다. 부처 명칭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로 바뀌었지만 양 부처의 모태는 교육부와 산업자원부였다. 따라서 그곳으로 통합된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공무원은 통합부처에서 '꿔다 놓은 보리자루'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다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기능이 기존 부처에서 각각 분리되었고 그들끼리 합쳐서 지금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부처가 탄생했다. 공동 소유이지만 세입자가 다시 주인이 된 격이었다. 이렇게 몇몇 부처를 전전했던 공무원은 과거의 치욕을 곱씹으며 똘똘 뭉치게 되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은 기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업무영역은 굉장히 이질적인 측면이 있다.
과학기술은 주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진흥(기초연구 진흥, 국가연구개발, 연구성과 확산 등) 기능을 하지만, 정보통신은 규제(주파수 할당, 전파사용료 부과, 방송/통신사업자 규제 등)와 진흥(정보통신 산업 진흥 등) 기능을 모두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한 몸이 되었다. 독임부처로 양립하기 어렵다면 지금의 부처 형태가 서로 주인 행세하기 좋기 때문에 이들은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비슷한 예로는 건설교통부와 해양부가 국토해양부로 통합되었다가 5년 뒤 다시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로 분리된 경우다. 이때 엉뚱하게 농림수산부는 수산분야를 해양부에 빼앗기고 농림축산식품부라는 이름으로 기능이 축소되기도 했다. 국토해양부에 통합된 해양부 공무원들의 신세가 앞서 말한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구구절절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은 이렇다. '진흥'과 '촉진'이라는 포장을 한 꺼풀만 벗겨보아도 이들 간에는 조직 간의 이해관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들이 정부조직개편 때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하마평에 단골로 오르는 이유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진흥과 촉진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국가가 특정 산업분야를 진흥한다는 발상이 그렇다. 과거 건설, 조선, 자동차, 반도체 산업을 키워낸 건 산업인력과 정부의 합작일지 몰라도 지금 정부가 외치는 미래성장동력 발굴이니 육성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레토릭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끊임없이 나와바리법을 만들어내고 모든 분야를 진흥하고 촉진한다. 이제는 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도, 교육도, 산림도 모두 진흥의 대상이다. '진흥'이라는 구닥다리 같은 표현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흥과 지원은 다르다. 진흥은 주체가 정부다. 지원은 주체가 민간이다. 정부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혁신해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면 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많은 것을 주도하고 싶어하는 반면, 그러기에는 정부의 역량이 급변하는 외부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졌고, 전문화되어 버렸다. 경제규모도, 정치구조도, 기업환경도 모두 엄청나게 커졌다. 그것을 알고도 정부는 여전히 '진흥'과 '촉진'을 외친다. 방대한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탁상행정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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