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하려는 자와 이용하는 자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

by 낙산우공

악어 이빨에 끼인 음식 찌꺼기를 먹는 악어새와 악어 사이의 공생관계는 허구라고 한다. 실제로 목격된 사례도 없을뿐더러 악어 이빨은 그 정도로 청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글에 언급하면서 그냥 정설로 굳어져 버린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악어가 왜 악어새의 도발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한다. 어쩌면 악어가 악어새의 존재를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악어의 감각이 둔하여 악어새가 입속에 들어온 사실을 몰라 가만히 방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그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 지나친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는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은 전에 말했듯이 본사와 지사 또는 지주사와 계열사 같은 관계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악어와 악어새에 더 가깝다. 공생관계이지만 긍정적인 상생관계는 아니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악어에게는 악어새가 필요하다고 가정했을 때 스스로 존재 가치를 상실한 악어새는 악어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따라서 악어새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악어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호소할 것이다. 공공기관도 그렇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구조의 공공기관도 있다. 이를 공기업이라고 한다. 이들은 정부에 의해 독점적 사업권을 받아 스스로 수익을 낸다. 민간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공익이라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꽤 있다. 민간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만큼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이거나 민간에 맡겼을 경우 시장이 과열되어 소비자인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는 분야의 경우에는 말이다.


이런 공기업을 제외하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진다. 흔히 "위탁집행형"이라고 분류되는 많은 공공기관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의 일부를 위탁 수행하는 일종의 대리인이다. 대리인과 고용주의 관계를 상상해 보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경우가 많다. 고용주가 대리인을 부리듯 공공기관은 때로 정부의 수족이 되고, 때로 정부의 부족한 두뇌가 되며, 때로 정부의 부적절한 돈줄이 된다. 여기서부터 야기되는 많은 사건들이 실제 일어났고 가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나가면 금세 잊히지만 말이다.


내가 첫 번째 근무했던 공공기관에는 연구실이라는 부서가 있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정책 관련 이슈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곳에 가보니 상시적이고 정규적인 업무 외에도 불시에 쏟아지는 일들이 무수히 발생했다. 그 일들은 대체로 퇴근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일어났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연구실 직원은 비상 대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저녁 6시가 되어도 떨어지는 일이 없으면 황급히 퇴근을 했지만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다시 회사에 들어오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다.


그렇게 불시에 하달되는 일은 항상 다음날 아침 9시 전까지 결과물을 보내야 했다. 간단한 자료조사의 경우에는 적당히 끝내고 퇴근할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난해한 주문이 내려올 때는 연구실 전체가 달려들어 밤늦도록, 몇몇은 밤을 새워 일한 적도 있다. 난 그 일들이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보고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일을 받아서 나누고 결과물을 모아서 정부에 보고하는 소위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던 팀장을 따라다니면서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먼저 우리에게 일을 던지는 사람은 행정부의 담당 사무관이었다. 그가 불시에 지시하는 업무는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신의 업무인데 내용이 어려워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할 때, 자신의 상급 과장이 비슷한 이유로 조사해 보라고 할 때, 그 위의 국장이 보고받다가 궁금해서 툭 던진 사안일 때... 등등의 이유로 온갖 조사분석 내지는 검토업무가 우리에게 수시로 떨어졌다. 우리는 어떤 목적과 의도에 의해 그 지시가 내려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관련 자료를 찾고 선행연구를 검토하여 논리적으로 정리된 검토의견을 작성하여 보냈다.


한 번은 꽤 묵직한 해외자료(영문보고서)에 대해 요약정리한 보고자료를 만들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내 기억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간하는 백서(white paper) 같은 자료였는데 보통 백서는 굉장히 방대하게 작성되어 있다. 그 100페이지가 훨씬 넘는 내용을 뜬금없이 요약정리하라고 하니 다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걸 꾸역꾸역 나눠서 정리하고 다시 합쳐서 뺄 거 빼고 얼추 요약자료가 만들어졌다. 다음날 오전에 행정부의 담당 과장에게 그 내용을 직접 보고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팀장이 나에게 함께 갈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본인이 직접 정리한 내용이 아니라서 그나마 보고자료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추리다가 만만한 나를 지목한 것 같았다. 난 보고자료를 작성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영문도 모른 채 팀장을 따라 모 호텔의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정부가 주관하는 거대한 작업반(Working Group)이 큰 원탁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가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있었다. 우리는 구석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잠시 짬이 난 행정부 과장을 만나 작성한 자료를 보고했다. 그다음에 충격적인 한마디가 돌아왔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번역한 걸 주지 말고 그냥 원문을 줘... 나는 그냥 원문으로 보는 게 편해..."


그렇게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과장 면담을 하고 우리는 돌아왔다. 4명 이상의 인원이 밤새 달려들어 작성한 원고는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지시해야 하는 담당 사무관은 과장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그 황당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을 새워 삽질을 한 것이다. 그 삽질을 시키고 담당 과장을 찾아갔던 얼굴마담(나의 팀장)은 그 뒤로도 승승장구했다.


나의 팀장은 행정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똘똘이"로 불리었다. 어리바리한 사무관이 무엇을 시키든 직원들을 들들 볶아 결과물을 가져오니 그를 충직한 "똘똘이"라 부를 만했다. 이런 표현은 보통 사람에게 쓰지 않는다. 행정부의 어떤 과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너희 100명(기관의 전 직원 수)이 있는 거다. 그걸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구..."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교수님이 있었다.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였는데 그분은 원래 미국의 꽤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국책연구원(공공기관 중 하나)에서 일을 하셨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연구원에 계시다가 대학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가 물었다. '왜 학교로 옮기셨냐고...' 그분의 스펙이면 훨씬 일찍 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10년이나 지나서 가신 이유가 궁금했다. 그분의 대답을 듣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분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연구만 할 수 있는 연구원이 좋았다. 그래서 오랜 기간 연구원에 몸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행정부의 한 공무원이 전화를 해서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어단어 하나를 물어보더란다. 교수님은 황당하여 그런 건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되는데 굳이 나에게 전화를 했느냐 따졌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단다.


"사무실에 사전이 있긴 있는데, 좀 멀리 있어서...."

모욕감을 참지 못했던 교수님은 황급히 학교를 알아보고 이직을 했다.


나는 공공기관에 근무한 지 8년 만에 행정부 5급 특채에 합격하여 사무관이 되었다. 그때 나와 같은 과에 근무하던 젊은 서기관 한 명이 그 교수님이 계셨던 국책연구원의 머리가 조금 벗어진 박사 한 명을 멀리서 보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저기 KIOOO(국책연구원의 영문약자) 빡빡이 간다~"


모든 수직적 공생관계에는 군림하려는 자와 그를 이용하는 자가 있다. 그들이 비록 윈윈 했을지 모르나 그 속내는 언제나 더럽고 추하다. 똘똘이도 빡빡이도 모두 나이 지긋한 아버지들이었다.


* Image by PublicDomainPicture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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