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간 사이, 그 모호한 경계

공공기관은 정부인가, 민간조직인가?

by 낙산우공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4조(공공기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장관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법인, 단체 또는 기관으로서 소정의 요건에 해당하는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은 공공기관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일단 공공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어야 한다. 즉 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을 공공기관이라 부르고 공공부문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기관의 요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법률에 따라 설립되고 정부가 출연한 기관, 정부지원액이 총수입액의 절반을 넘는 기관, 정부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거나 사실상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 등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원 또는 사업권 허가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어야 공공기관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이유는 국가가 직접 수행하기에는 부적합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특수한 업무를 보다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난히 방대하고 복잡하다.


정부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기관만 350개(2022년 기준)이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범주화하고 유형을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공운법이라는 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률에서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범위를 제시하고 있을 뿐 모든 공공기관을 특정하여 나열하고 있지는 않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한차례 공공기관 지정(공시)을 통해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기관과 새롭게 포함시켜야 할 기관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수는 해마다 바뀐다. 공운법 상 공공기관 지정대상이 되더라도 반드시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는 않는다. 지정의 실익이 있는지 여부는 기획재정부가 정한다.


아무튼 공공기관은 정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사람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을 혼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이들을 묶어서 공공부문이라 부르는 것이다. 기관의 형태나 직원의 신분과 무관하게 이들 모두는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공사, 공단, 진흥원, 연구원, 정보원, 관리원과 같은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소정의 요건을 갖추고 정부가 지정하면 공공기관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기능적으로 또 재정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본사(Headquater)와 지사(Branch)처럼 이해해도 된다. 그러나 그들 내부에서는 양자가 엄격히 분리된다.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분이 같은 경우는 본부와 소속기관(외청)이 해당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널리 알려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은 질병관리청과 같은 외청이 아니다. 굳이 이렇게 비교사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공공부문에 만연해 있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특수한(?)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형식상 법인이기 때문에 민간부문이라 볼 수 있는데 실질상 공공부문으로 분류된다. 그 모호한 경계가 공공기관의 위상과 지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설립 운영하는 이유는 법률 또는 법인의 정관에 그 목적이 나와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이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350개나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 복잡다단한 관계의 특수성이 매우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유발하기도 한다.


정부에게 공공기관은 때로는 총알받이, 때로는 위장계열사, 때로는 공무원 노후보장의 수단으로 다양하게 기능한다. 공공기관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고유의 역할과 권한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으며, 철도공사가 철도노선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 즉, 공공기관은 철저하게 정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운영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공기관 경영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정부로부터 경영성과를 평가받는다.


올해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의 경영성과는 전기요금 동결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기관장의 경영능력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등급)에 따라 성과급 지급률(성과연봉)이 결정된다. 공공기관을 다른 말로 정부산하기관(정부소속기관인 외청과는 전혀 다른 의미임)이라고 부른다. 공공기관 사람들은 자조적인 표현으로 '정부수발기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공공기관에서 8년을 근무하면서 내린 결론은 공공을 완전히 떠나 민간으로 가든지 아니면 공무원이 되든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배워먹은 게 도둑질이라 공무원이 되었다.


* Image by Greg Montan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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