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이란 어떤 곳인가?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업무 강도로 인해 대기업보다 급여 수준이 낮더라도 공공부문을 선호하는 추세는 꽤 오래되었다.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임원 승진을 못한 오십 대 직원을 찾기 힘든 대기업과는 사뭇 다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 근무할 수 있고 그 덕에 생애 총급여는 오히려 대기업 못지않다는 얘기도 있다. 더구나 공무원은 국민연금보다 높은 수준의 직역연금으로 노후를 보장받는다. 무엇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조기 퇴직한 친구들처럼 취업이나 창업시장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으로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하는 리스크를 처음부터 피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공공부문은 언젠가부터 월급쟁이 사이에서 신화가 되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남편은 오십 대 주부들의 로망이다. 삼식이 타령이나 하면서 하루 종일 잔소리해대는 남편은 집에 없고 매달 월급이 넙죽넙죽 통장에 꽂히니 수억 원을 쌓아놓고 집에서 고스톱 치는 명퇴자 남편보다 못할 게 없다. 여자는 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가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설(?)이 되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공공기관)에 다니는 남편이 대접받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최근의 공시 경쟁률이 예년에 비해 하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그 환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 건 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아는 지자체 공무원들처럼 9 to 6(9시 출근 6시 퇴근)를 철저히 지키는 일이 쉽지 않고(물론 지자체 공무원들도 6시에 칼퇴근하지 않는다. 은행 영업이 끝났다고 은행원들이 퇴근하지 않듯이), 조직에서의 야망을 포기하더라도 공공부문의 생존환경은 녹록지 않다. 제아무리 정규직이라는 타이틀로 신분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공공부문은 뭉뚱그려 평균을 내어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대기업의 평균 급여가 모든 대기업의 환경에 수렴되지 않듯이 공공부문의 근무환경과 처우는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공공부문에도 무수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겨져 있다. 과거 이들을 정규직화 하려는 대대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생산성이라는 잣대는 공공부문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지표가 되었다.
공공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을 보자. 특수한 업무를 수행하는 예외적인 경우(특수직)를 제외하고 흔히 말하는 일반직 공무원은 크게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뉜다. 이들은 소속이 국가기관이냐 지방자치단체냐에 따른 분류이기 때문에 처우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똑같이 공무원연금에 가입되어 있으며 동일한 보수체계에 의해 급여를 받는다. 물론 연봉제 도입에 따라 각각의 급여에 차이가 생겼지만, 치열한 민간의 기업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일반직 공무원은 다시 대다수의 정규직 공무원과 소수의 임기제 또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나뉜다. 전문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일반직 공무원의 정원 중 일부를 임기제(임기에 따라 당연 면직할 수 있는)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 이들은 엄밀히 보면 계약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 일반계약직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없애고 교묘하게 정규직처럼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는 임기에 따라 신분보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속칭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 부른다. 간혹 언론에 등장하는 '어공', '늘공(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란 표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다수의 늘공은 언제나 소수의 어공을 압도한다. 그들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언제나 늘공의 완승으로 종결되는 이유다. 늘공도 태생에 따라 공채와 특채로 갈린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하겠다)
공공기관으로 들어가 보자. 더 복잡하다. 과거에는 정부출자기관,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 정부보조기관 등등 수많은 법령에 따라 제각각 관리되었던 곳이 바로 공공기관이다.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관리체계를 개선하고자 소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부가 만들었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어떤 재원에 따라 운영되느냐이다. 이 법률의 제정에 따라 현재 공공기관은 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그리고 기타공공기관...
공기업은 쉽게 말해 일반 기업처럼 운영되는 곳이다. 대신에 정부가 독점적인 사업권을 주기 때문에 땅 짚고 헤엄치는 격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공사, 철도를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KORAIL), 화폐를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한국통신(KT)과 포항제철(POSCO)도 공기업이었으나 이제 민영화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무튼 이들 공기업은 자산규모나 수입액에 따라 다시 시장형과 준시장형으로 나뉜다. 규모가 크거나 자체수입이 많으면 시장형이다.
준정부기관은 공기업이 아니면서 굵직굵직한 공공기관이다. 공기업처럼 수익을 창출하지 않지만 규모가 제법 큰 곳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 또한 기능에 따라 기금관리형과 위탁집행형으로 나뉜다. 기금관리형이란 정부의 기금을 관리하는 것을 말하며, 체육진흥기금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근로복지기금을 관리하는 근로복지공단 등이 대표적이다. 위탁집행형이란 정부가 해야 하는 기능의 일부를 위탁받아 대신 수행하는 기관들이다. 국가장학금을 운영하는 한국장학재단,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집행하는 한국연구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기타공공기관은 앞에서 말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에 해당하지 않는 기관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이들 기관은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지만 딱히 따로 분류하기 힘든 기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기능도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경북대, 전남대 등 국립대학교가 운영하는 병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같은 정부출연연구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은 문화예술지원기구까지 성격도 유형도 다양하다. 처음 들어본 생소한 이름의 기관들도 많다. 2022년 기준으로 이들만 220개나 된다.
공공기관의 직원은 민간인 신분이다. 이들을 간혹 '준공무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가가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며, 정부예산 또는 국가의 독점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들의 책임과 의무가 공무원에 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런 하소연을 한다. 의무는 공무원처럼, 권리는 민간인처럼... 즉 공무원연금과 같은 신분상의 특혜는 없으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공무원에 준하는 책임과 윤리의식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기관은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관에 따라 임금체계가 다를 뿐 아니라 상당히 높은 급여를 보장하는 곳도 많다.
대표적으로 금융공기업이라고 하는 곳들이 그렇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이 있으며, 금융공기업은 아니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나 한국조폐공사는 알짜 공기업으로 통한다. 이들 기관의 임금 수준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검색으로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된다. 모든 공공기관은 경영목표와 예산 및 운영계획, 결산서, 인력현황, 인건비 및 복리후생비 등에 관한 경영공시의무가 있다.
그런데 왜 공공부문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신도 모르는 직장이라 부르는 걸까? 공식적인 공공부문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실질이 공공부문인 기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에서 말한 공운법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직원의 처우가 더 자유롭다. 대표적인 몇몇 거대한 기관들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모든 시스템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그곳에 신도 모르는 직장이 있다.
공공부문의 정규직원은 모두 정년이 보장된다. 법령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고서는 이들을 해고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법에 저촉되는 대형사고를 치지 않는 한 이들의 밥통을 건드릴 수 없다. 이것이 사기업에 비해 공공부문의 직원이 갖는 가장 큰 혜택이다. 이 혜택은 때로는 무기가, 때로는 방패가 되지만, 아주 가끔은 족쇄가 된다. 정년이 보장되는 꿈의 직장을 박차고 나올 만큼 용감한 자는 세상에 많지 않다.
공공부문이 어떤 곳인지 대강 알았으니, 이제 그곳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야기해 보자.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