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을 거쳐간 자

어느 국장님의 공공기관 성공기

by 낙산우공

내가 초임 사무관으로 행정부에 근무할 때 내 직속상관인 국장은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었다. 지금은 임기제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공식적으로 계약직 공무원은 사라졌지만, 흔히들 무늬만 바뀌었을 뿐 실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튼 국장이라는 직위는 고위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꽤 높은 자리인데 정부에서는 민간전문가를 수혈한다는 명목으로 소위 '개방형 직위 공모'라는 제도를 통해 이런 비정규적인 인재 채용을 시행한다.


이렇게 직위 공모를 통해 2~3년 임기로 채용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특수한 절차로 고위공무원에까지 오르신 내 상관의 이력을 잠시 소개하려는 것이다. 이 분의 이력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공공부문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이들의 경력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분은 계약직 공무원이지만 원래 소속은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에 계신 분이었다. 따라서 공무원 신분으로는 계약직이었지만 잠시 고용휴직이라는 제도를 통해 공무원이 된 것이기 때문에 임기를 마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는 안정적인 입장이었다.


장관이나 차관으로 임용되는 대학 교수들이 임기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게 바로 고용휴직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기관, 국제기구 등에서 근무하기 위해 잠시 휴직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공공부문은 이러한 형태의 고용휴직을 장려한다. 나의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앞서 소개했듯이 정부와 그 산하의 공공기관은 묘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즉 수평적인 형식을 띠지만 실질은 수직적인 관계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과연 이 분이 공무원 신분으로 부하직원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분은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공공기관으로 돌아가게 되면 과거 자신의 부하직원이었던 공무원의 업무지시를 역으로 받들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분도 흔히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공기관을 사직하고 정규직 공무원(경력직 채용)으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일이 없었기에 나와는 다른 경우였다. 역시나 그분의 1년 남짓한 국장 시절은 애매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우리 국에는 3개 과가 있었는데 과장 회의를 할 때조차 참석을 하지 않는 '늘공(공채 출신 정규직 공무원)' 선임 과장이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장의 업무지시가 제대로 먹혔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데 더 어이없던 것은 이 국장님조차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부득이하게 고위공무원 직위공모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인사혁신처의 권고나 일종의 의무할당 같은 것이다. 공무원들이 대부분 공채(과거 고시라 불리던 5급부터 7급,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이르기까지) 출신이기 때문에 연공서열에 학연, 지연 등 패거리 문화가 만연해 있다.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행하는 일종의 전시성 제도가 있으니 그 대표적인 게 개방형 직위공모다. 공모 대상이 개방적이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임원 출신, 변호사 등 전문직, 대학 교수, 박사급 연구직까지 그 대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유입된 계약직 공무원이 능력(?)을 발휘하여 임기를 연장하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늘공은 언제나 이게 두렵다. 공무원 사회의 인사적채 때문이다. 고위직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 특히 민간기업처럼 치열한 경쟁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공무원 사회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승진코스에서 탈락하지 않는다. 아무튼 나의 국장님은 이렇게 공무원들이 사수해야 할 국장 자리를 잠시 맡아주기 위해 법적으로는 민간으로 분류되는 공공기관에서 떠밀려 올라온 경우였다. 이분의 임기는 보장이 되어 있었지만 이 분 역시 이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기고서 차관에게 사정하여 휴직했던 본래 직장(공공기관)으로 복귀했다고 소문이 돌았다.


물론 이분은 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잠시 원치 않은(?) 희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보상인지 모르지만 영전을 하였다. 또한 잠시 국가기관의 고위공무원을 했다는 것이 그의 경력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분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공기관의 2인자(부원장) 자리로 복직하였다. 그리고 그분이 잠시 맡아 준 국장 자리는 다시 공채 출신 공무원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본래의 소속으로 복귀하였던 과거 나의 국장님은 그 뒤로 잠시 보직에서 물러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결국 정년을 넘기고도 다른 공공기관의 기관장(이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성공신화를 썼다고 불릴 만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분을 내가 소개하려 했는가 하면 이 분이 회식 자리에서 내게 자랑삼아 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나의 국장님은 부하직원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공공기관 출신인 나를 조금은 편하게 생각했다. 잘해줬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금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중에 잊혀지지 않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그분은 술을 그다지 잘 마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평소 주량인 막걸리 한 병을 넘어 두병을 싹싹 비우고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오른 줄 아냐? 공공기관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줄 알아?"


처음에는 행정고시 출신의 잘 나가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그들이 초임 사무관인 시절부터 인맥을 다져왔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공공부문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그분의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냥 썩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우쭐대며 말하는 꼴이 좀 우습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당시 행정부에서 잘 나가는 여자 간부들(국장, 과장급)의 이름을 줄줄이 읊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걔들 중에 내 등을 거쳐가지 않은 애가 없어. 걔들 초임 사무관 때 술 취하면 내가 다 업어서 택시 태워줬어~~~"


나의 국장은 북촌 물장수의 물항아리 대신에, 시장 지게꾼의 등짐 대신에,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업어 나른 것이다. 그가 젊었을 때 어떠하였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유난히 마르고 왜소해 보였다. 물론 가벼운 여성 한 명을 들쳐 업는 정도야 가능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나는 내 아이들 말고 등에 누군가를 업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누굴 업을 힘도 없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 Image by Michelle Rapon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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